RARITYCOMMON
KOREAN C.V.김기철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탐관오리타인의 고통을 대가로 권력을 얻은 자.인생의 짧음을 지나치게 믿은 나머지 당장의 이득과 재물, 권력만을 탐하게 된 부패한 관리. 눈 앞의 이익에 가장 밝은 권력자.
"대중은 개돼지입니다."
"뭔 개소린가?"
"아, 취했나 봅니다. 증조 할아버지 서재에 있던 컴퓨터에서 본 고전이 갑자기."
"아.... 내부자들? 그거 명작이지. 하긴 맞는 말이긴 하지."
이 근방에서는 왕이라고 해도 좋을 사또, 김응지는 고개를 주억거리며 껄껄 웃었다.
확실히 대중은 개돼지가 아닌가.
위에서 뭔 짓을 해도 금세 잊고, 힘 있는 자에게 알랑거리고.
당장 방금 입을 연 저 놈도 마찬가지였다.
고작해야 사또 따위에게 달싹 붙어서 아부나 해대는 인생이라니.
'나는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할 인물이지.'
거울 속 얼굴을 보면 확실히 특별한 일을 해야 할 사람 같았다.
우선 잘생겼다.
나이가 들면서 살이 좀 붙기는 했지만.
하여간 관상부터가 그렇지 않나.
'재상께 뭐라도 드리려면.... 지금 모아두는 수준으로는 어려워.'
큰 물.
즉 이 나라의 중심.
모든 것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힘을 원했다.
그러자면 정말 눈에 들 만큼 큰 선물이 필요할 터였다.
"네? 세율을 70%로요....?"
"그래. 왜, 못하겠어?"
해서 세율을 올렸다.
징수원 조차 깜짝 놀랬을 만큼 높은 세율이었지만, 사또는 눈하나 깜짝 안했다.
어차피 이 놈이 못한다고 하면 다른 놈을 보내면 될 터였다.
할 일 없어 빈둥거리는 새끼들 많지 않나?
그 와중에 나쁜 짓이라고 하면 기가 막히게 잘 하는 놈들이 하나 가득이고.
"아니, 하겠습니다. 네, 해야죠."
"그래, 그럼 가봐."
그래도 뭐.
원래 하던 놈이 하는게 낫겠지.
징수원.
저 새끼 이름도 징수원이잖아.
조상 대대로 세금 걷어온 놈 같지 않나.
"자, 그럼 놀아보자꾸나!"
중앙으로 가면 이렇게 바지 벗고 소리지르면서 놀 날이 어디 있겠나?
나랏일 하느라 골머리 싸맬텐데 미리 놀아놔야 중요한 일 할때 집중력이 흐트러지지 않지.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말도 안되는 핑계를 대면서 한창 놀고 있으려는데 포졸 하나가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뭐야, 이놈아!"
부리나케 바지를 입는데, 녀석 동공이 방황하는게 심상치가 않았다.
"뭐? 암행어사?"
아니.... 나보다 더한 놈들이 수두룩 빽뺵인데 왜 하필 여기를 왔단 말인가.
어찌하지?
일단 룸살롱으로 데려올까?
"여자분이시라고?"
그럼 안되지.
열받아서 당장 목부터 벨 수 있었다.
'호빠를...?'
우리 고을에서 제일 잘 나가는 호빠가 어디 있더라?
그래, 서울 가서 성형한 잘 생긴 애들로다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또 여차하면 튈 생각으로 가슴팍에 받혀 둔 티타늄 합판을 확인하면서 차를 타고 왔더니 징수원이 바닥에 널부러져 있었다.
나머지는 모두 어리둥절한 얼굴이었다.
"어사께서는 어디 계시냐?"
물었더니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뭐야? 갑자기 급한 일이라도 생겼나?'
어디 간 모양이었다.
그래, 그럼 됐지.
그래도 혹시 몰라 며칠 기다렸지만 아무도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그냥 간 모양이다!
아니면 심근경색으로 더 먼데로 가셨거나!
"좋아, 바지 벗고 쏴리 질러!"
해방감에 룸살롱에서 놀아제끼려는 찰나 귓가에 뭔 소리가 울렸다.
"누가 이런 구닥다리 음악을 트느냐! EDM이 취향이라지 않았더냐!"
불호령을 내렸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또 다시 소리가 울렸고 이내 곧 김응지는 플랫폼으로 끌려왔다.
확신할 수 있었다.
그보다 개털로 끌려온 이는 없으리라는 걸.
하필 바지를 벗고 있는데 끌려와서 윗도리만 입고 있지 않았나?
'그게 처음이었지.'
탐관오리는 이제 익숙해져 버린 플랫폼을 바라보았다.
처음 왔을 땐 진짜 혼란스럽기 그지 없었지만, 이젠 아니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하지 않았나.
옛말치고 틀린 말 없다는 걸 그때 알았다.
'사명...대사라 했지.'
그에게 도움을 받았다.
혼자였다면 어땠을까?
어리버리 타다가 죽지 않았을까?턱으로 부리던 포졸들이 없는 자신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았으니까.
'두번째는....'
플랫폼으로 다시 끌려 왔을 땐 사정이 좀 나았다.
-처사께서도, 돌아가게 된다면 마음을 고쳐먹게나.
사명의 말 때문만은 아니었다.
뭔 말인지는 알겠으나, 그렇다고 욕망이 어디갈 수는 없지 않겠나.
가진 것에 비해 더 많은 것을 바라는 것은 그의 천성이라 어찌할 수 없는 일이었다.
허나, 확실히 한발짝 더 나아갈 수는 있었다.
'비록 조금 손해를 보는 일 같을지라도.... 종래에는 이득이 될수 있는 경우도 있다, 이거지.'
인생의 진리를 꺠우친 느낌이었다.
늘 눈 앞의 이득에 눈이 돌아갔었는데.
그 후에 더큰 과실을 위해서라면 조금 참을 줄 알게 되었다, 이 말이었다.
이쯤되면 사명의 말마따나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어.... 저거....'
이번은 자그마치 세번째.
이제 감히 플랫폼도 익숙해졌다 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그런 그의 눈에 한 명의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아니, 여인이라기엔 너무 어렸다.
소녀라고 해야할까?
김응지의 눈이 소녀의 어깨 휘장에 닿았다.
꿈에서도 보고싶지 않았던 바로 그 휘장.
'암행.... 어사.'
어리다고 우습게 볼 수 있는 존재는 아니었다.
상대는 이를테면 자신의 천적과도 같은 존재였으니.
저도 모르게 일단 숨었다.
그러다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다.
'왜 이렇게 두리번 거리지?'
암행어사도 세번째라면 저래서는 안되는 법이었다.
자신에 비하면 거칠 것이 없는 존재 아닌가.
휘장을 두드리면 역졸들이 뛰어 나와 상대를 조질텐데.
딱히 비굴하게 빌빌 거릴 필요도 없을 거 같은데, 왜 저럴까.
'혹시....'
스트로크라 불리는 현상.
시공간이 뒤틀린다 했다.
어쩌면 자신은 3회차지만 상대는 아닐런지도 몰랐다.
낯선 공간에서 사람이 얼마나 나약해지는지는 탐관오리가 제일 잘 알았다.
연신 두리번거리며 더듬더듬 걷는 모습을 보고있자니 의심은 확신이 되었다.
'어쩐다.'
허면 저 것을 어찌할까.
플랫폼에 끌려온 존재는 깊은 내면에서부터 항상성이 훼손될 수 있음을 알았다.
당장 적이니 살심이 뭉개뭉개 피어 올랐지만, 한편으로는 다른 생각도 들었다.
'여기서 도와.... 빚을 지운 다면 어찌될까.'
말도 안되는 생각이지만.
암행 어사를 도와 그녀가 이 곳을 무사히 빠져나가게 돕는다면 현실에서는 도움을 받을수도 있지 않을까?
결심이 선 이상 망설일 필요는 없었다.
탐관 오리는 서둘러 달려 암행어사를 불렀다.
"저기, 도움이 필요한 모양인데?"
영 어색한 조합이 되기야 하겠지만, 하여간 돕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