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COMMON
KOREAN C.V.조현정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무당자신의 몸에 신을 깃들게 하는 그릇.부적을 만들고 미래를 점치는 한국의 전통적 샤먼. 신에 의해 선택받게 되면 거부할 수 없다. 우주의 흐름을 엿보는 대신 자신의 행복을 대가로 바친다. "우리 애 어째야 하죠?" "어쩌긴. 신내림을 받아야 한다니까?" 무당은 진중한 얼굴이었다. 실력 없는 놈이라면 또 모르겠는데, 이 인간은 아니지 않나. 아이 엄마는 한숨을 푹 쉬었다. 그리곤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었다. 두툼했다. "굿으로 어떻게.... 안됩니까? 돈은 많아요" "안돼." "아니, 장군신 부르면 어지간하면 된다면서요!" "그...." 무당은 쯧 하고 혀를 찼다. 그리곤 아이를 아니, 아이라 하기엔 성년이 된 여성을 바라보았다. 후드티에 청바지 그리고 대강 길러 묶은 머리만 보면 여느 대학생이나 다름 없는 외양이었다. 허나 널뛰듯 찾아오는 발열과 경기는 그런 외양을 많이 망가뜨리고 있었다. '확실히 처음 볼 때랑은 많이 다르네....' 탐이 날 그릇인가. 그건 솔직히 모르겠다. 하지만 무당의 생각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어마어마한 귀신이... 아니 그정도면 귀신이라고 할 수 있으려나. 아무튼 그 거대한 존재가 이 아이를 노리고 있었다. 집요하리만치 끈질기게. "이건 장군신으로도 안될 일이야." "아니, 대체 뭐길래요!" "장군신도 다 같은 장군신이 아니야. 그 대춧빛 얼굴만 보면.... 사지가 떨려. 무서워." "무섭다니. 그게 무당이 할말이에요?" "그러니까.... 나도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니까? 돈 필요없으니까 그냥 신내림이나 받아. 공짜로 해줄테니까." 돈을 마다 하는 무당을 본 적 있는가. 아마 드물 터였다. 어느 분야건 간에 진짜배기는 드무니까. 하여간 이 인간은 진짜였다. 어머니는 아이를 데리고 집에 갔다. 그리고 다음날 신내림을 받았다. 진정제를 놔도 진정되지 않는 경기에, 어머니는 굴복했다. 아니, 아이의 말이 어머니의 마음을 꺾었다. -나.... 이제 그냥 받을래. 너무 힘들어.... 생이 뒤집히던 날의 기억이었다. ——————— 일하다 말고, 처음 '그 놈'을 받아들이기로 한 날의 기억이 떠올라버렸다. 고개를 휘휘 젓고는 불안한 얼굴로 나만 바라보는 고객에게 말했다. "잡귀가 있네." 무당은 집을 둘러보다가 중얼거렸다. 그리곤 손을 내밀었다. "무슨...?" "백. 그 정도면 날려버릴 수 있어." "아.... 아, 네네. 그럼 아무 일도 없는 건가요?" "당연하지. 의심하지마." "네, 감사합니다!" 돈 백만원을 받고, 무당은 굿도 하지 않았다. 그저 오는 길에 마트에서 대강 산 팥 한줌을 집 안 이리 저리 던져댔다. 고객, 그러니까 집 주인은 불안한 얼굴이 되었다. '이게.... 정말 되는건가?' 돼지 머리라도 사서 고사 지내야 되는 거 아닌가? 집주인은 불안한 얼굴로 그 꼴을 지켜보았다. 아니, 본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는 이 집안에서 벌어지는 일을 보지 못하고 있으니까. 그의 망막엔 지금 팥에 맞아 내쫓기며 신음하는 잡귀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으니까. 그에 반해 무당은 정확히 귀신들을 향해 팥을 던지고 있었다. 소멸 시킬 수는 없었다. 그녀는 저승사자가 아니니. 정확히 말하면 염라의 권능을 빌려올 수 없으니. '저승사자 놈들은 대체 뭘 하는 걸까?' 하지만 고통은 줄 수 있었다. 여기 얼씬도 못하게 만들만큼의 고통을. 이 재주 만큼은 마음에 들었다. 다른 무당들은, 그들이 담은 신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한 일이었으니. "자, 이제 됐네." "아.... 정말입니까?" "의심되면 다시 부르고." "아니, 아닙니다. 과연 소문대로입니다." 사실 굿이라도 하게 되면 성가신 일이 하나 가득이지 않나. 집주인으로선 피로 물든 바닥 따위를 보지 않게 되어 다행이다 싶었다. 어쩐지 뭐라도 하지 않은 것이 허전하게 느껴지기는 했지만. 인터넷 후기에도 쓰여있지 않았나. 진짜라서 그런지 허례허식이 없고 단출하다고. "어...." 그때 무당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왜.... 왜 무슨 일이라도...." "너희 집 문제는 아니니 걱정마라." 귓가에 소리가 들려와서 그랬다. 얼마 전 알고 지내던 저승사자 하나가 끌려갔다는 건 들었더랬다. 그래, 그 정도 되는 존재라면 이해할 수 있었다. 염라의 권능을 끌어쓰는 존재들이니. 하지만 내가? '난 그저.... 잡귀나 쫓는 사람인데.' 고민과는 별개로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디리링 체념은 그리 늦지 않았다. 신내림을 받은 날부터 그랬다. 세상엔 자기 뜻대로 절대로 안되는 일도 있는 법이었다. 정말이지 무슨 수를 써도 안되는 일이 있었다. "오셨군요, 무당." "저 말고도 대단한 무당이 많을텐데...." "선택된 것은 당신입니다." 여인은 아니, 무당은 습관처럼 끼고 있던 선그라스를 매만졌다. 신내림이 있던 날 하도 힘을 줘서 그런가 눈가에 터진 실핏줄이 여전히 아물지 않고 있었다. 벌써 몇년이나 지났음에도 이렇다는 건 이 흉터가 이전 생의 증거여서가 아닌가 싶을 지경이었다. 무당은 이따금 그 흉 대신 선그라스를 만지는 것으로 생을 추억하곤 했다. 지금? 지금은 그저 불안해서 만지고 있었다. "이 곳에선 무엇을 하건 그대 자유입니다." 자유라는 말을 믿지 못해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그 어느때보다 실감할 수 있었다. '망할.... 어디간거야.' 원하지 않을 땐 그렇게 경기까지 일으키면서 지랄이더니. 대충 봐도 위험해 보이는 곳에 오니까 사라졌다. 무슨 수를 써도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했던 놈이라 더더욱 배신감이 느껴졌다. "너무 걱정마십시오. 그대의 능력은 고작 그것에 국한되어 있지 않으니." "그것이라니...." "말이 많았군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어, 가지마!" 안내자는 무당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휙 사라져버렸다. 그와 동시에 인지할 수 있는 공간이 급격히 넓어졌다. "아...." 그럼에도 자기 내면의 귀신은 느껴지지 않았다. 흔적조차. 소멸했나 싶을 정도로 완벽하게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망할...." 무당은 귀신이 없다는 사실에. 또 그토록 저주스럽던 존재를 내 쪽에서 찾고 있다는 사실에 절망한 채 욕설을 뇌까렸다. 그러다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나 비어있는 건가?' 공간은 느껴진다. 안에 있는 드넓은 공간. 누군가 비집고 들어오면서 강제로 넓히게 된, 그러나 안에 그 누군가가 꽉 차 있어서 느낄 수 없었던 허공이 있었다. '이 안에.... 다른 걸.... 더 좋은 걸 담을 수도 있을까?' 그제야 비로소 안내자가 말했던 자유라는 말과, 나의 능력이 그 녀석에게 국한되지 않는다는 말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낯선 공간에서의 공포가 사라지진 않았다. 허나 희망은 그 어떤 인간에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용기를 선사하는 법. 무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었다. 그녀는 선그라스를 매만지면서, 앞으로 걸었다.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 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이 자리에 그대로 있는 것 보다는 나을 것 같다는 생각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