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LEGENDARY
KOREAN C.V.최 한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이순신군신이 된 인간.조선시대 수군을 통솔했던 해군제독으로서 인류 역사상 가장 뛰어난 해상전의 지배자. 직접 창안한 거북선을 중심으로 수많은 군선을 자신의 손발처럼 움직이던 그의 함대는 단 한 번의 패배도 허락하지 않았다. 자신의 죽음조차 전술적 무기로 사용한 그는 이후 전쟁의 신으로 추앙 받았다. 12척의 배만으로도 전쟁의 향방을 결정지었던 그에게 우주는 어떤 함대를 맡길 것인가. "제독,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십니까." 이순신은 부관의 말에도 즉시 답을 하지 않았다. 그저 눈을 감았다. 스쳐지나가는 기억은 무수히 많았다. 명량부터 한산도 그리고 노량까지. 그러나 기억이 멈추는 곳은 늘 같았다. -장군, 위험합니다! 자신을 믿어주지 않는 주군을 위해 싸우는 것 만큼 미련하고 외로운 일이 또 있을까? 승전보를 울리며 돌아가면 무엇할까. 없는 죄를 물어 죽임을 당할 것이 뻔한데. 해서 이순신은 갑옷을 덧대 입지도 않고 총알이 빗발치는 가운데 몸을 내밀었다. -장군! 들어가셔야 합니다! 이미 이겼습니다! 이제 돌아가셔야죠! 내가 살아있으면 이들은 무사할 수 있을까? 아니, 그럴리가 없었다. 제보다 잘난 부하를 인정할 수 없는 왕은 아마 이들도 죄 죽여버릴 터였다. 가만두면 자신을 도와 역적이 될 것임이 틀림없다는 말을 하면서. 아니면 복수를 꾀할거라 하면서. -되었다. 내 걱정은 말라. -장군.... 차라리 이 길로.... -그 입에 불충한 언사를 논하고 싶으면, 그저 다물게. -하지만.... -되었네. 이순신의 통찰이 대단해서 미래를 꿰뚫어 본 것은 아니었다. 명약관화한 미래였다. 이때껏 임금이 보여준 모습만 복기해도 충분히 예상이 가능했다. 때문에 부하들 중엔 역모의 죄를 물을거면 차라리 진짜 역모를 해보는 게 어떻겠냔 말을 해온 이들도 적지 않았다. 그걸 받아들이면 어찌될까. '알 수 없는 일이지.' 육지에는 또 육지만의 싸움이 있는 법. 게다가 의미없는 가정이기도 했다. 신하된 몸으로 태어나 어찌 임금을 죽일 생각을 품겠는가. 이순신은 장군이기 전에 선비였다. '백성들을 생각하면 있어서는 안될 일이기도 하지.' 이미 오랜 전란으로 피폐해질 대로 피폐해진 민초를 또 다시 짓밟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도 제 한몸 살아보겠다고? 구차한 이유지 않나. -윽 그래서 죽기로 결심했다. 숨길 생각없이 치장한 대장선으로 눈먼 총알이 쉴 새 없이 날아들 것이란 건 어린 애도 떠올릴만한 생각이었으니.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 마침이라고 해야할까? 하여간 총알이 가슴께를 뚫고 지나갔다. -장군! 장군! 부하들이 비명이, 울음이 귓가에 울렸다. 거기까지는 딱 예상대로였다. -띠리링 허나 음악 소리는 예상치 못했더랬다. "안녕하십니까, 군신이시여." 플랫폼이라는 곳에 이동하게 된 일 또한 그랬다. 사방을 둘러 보니 온통 어둠이었다. 나중에야 알았다. 그것을 우주라고 한다는 것을. 허나 당시에도 지금도 이순신에게 그것은 바다였다. 검은 바다. 바다에 둘러싸인 이순신에게 두려워 할만한 것이 있을까. "나를 알고 있다면, 나를 어떻게 써야할지도 알고 있을 터." "저는 단지 안내자일 뿐...." "그렇다면 나는 그대와 더 할 얘기가 없네." "네?" "그대의 주인을 불러오게. 나를 쓰고 싶다면 중히 쓰고, 그렇지 않다면 이 자리에서 죽여야 할테니." "그건...." "저 바다의 주인이 누군인지 내가 정해줄 수 있다는 걸.... 모르는가?" 안내자의 동공이 이리저리 방황하는가 싶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가 어떤 존재와 함께 돌아왔다. 그 존재는 이순신의 말을 다시 한번 청해 듣고는 껄껄 웃었다. "그래, 함대는 얼마나 필요하겠나." 그리곤 물었다. 목소리가 어찌나 큰지 공간 전체가 울리는 기분이었다. 아니, 그걸 목소리라고 할 수 있을까? 이순신에게는 죽음보다도, 이공간으로 끌려온 경험보다도, 그 울림이 더 인상적인 기억으로 남았을 지경인데? "열두척의 배로도 적을 몰살 할 수 있었으나.... 다다익선이라는 말을 아시오?" 지금와 생각해보면 용케 답을 했다 싶었다. 아마 바다가 힘을 준 것 같았다. 아니면, 그 존재가 허락했던 걸지도. 하여간 그때 안내자의 눈은 그야말로 튀어나오기 직전이었다. "다다익선이라. 네 말이 옳다. 그래, 내 함대를 내어주마." 함대라기에 그저 배인줄 알았더니.우주 전함이라 불린다 했다. 적응하는데 시간이 걸릴거란 경고도, 안내자는 잊지 않았다. 결과론적으로 그건 기우였다. 검건 푸르건. 하늘 위에 있건 하늘 아래 있건. "결국, 다 같은 바다 아닌가." "제독?" "아, 옛날 생각을 하고 있었네." 이제 이순신은 검은 바다를 그가 맡긴 함대를 끌고 누비고 있었다. "좌측에 적입니다!" "시끄럽게 외치지 말게. 모르고 온 것도 아니거늘." "아, 네." "마지막 남은 잔당이니, 제법 독기가 올랐을걸세. 허나...." "예상대로 입니다, 제독!" 전승 제독. 그것이 이순신이 이 곳에서 새로이 얻은 별명이었다. 실제로 그가 지휘봉을 잡은 이래 검은 바다는 완전히 그의 발 아래 놓였다. 단 한번도 예외는 없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포위망을 짜고 발사되는 포화에 적선은 속수무책이었다. 한 때 과학시술의 총아로 빛을 발하던 것들이 한줌의 재가 되어 바다를 유영하고 있었다. "제독, 경하드리옵니다!" 적은 또 한 세계의 주인이었던 자. 이를 무너뜨린다는 건, 말로 설명하기도 어려울 만큼의 업적이었다.허나 이순신은 그저 담담한 얼굴로 벽에 그어 놓은 빗금을 하나 늘릴 뿐이었다. 아니, 그의 눈은 또 다른 바다를, 또 다른 세계를 향하고 있었다. "다음은 어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