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LEGENDARY
KOREAN C.V.김영선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홍길동자신의 힘으로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 자.귀족의 자식이었으나 서자라는 한계로 인해 뿌리를 부정당했다. 운명에 순응하길 택하는 많은 이들과 달리 홍길동은 그것에 저항하기로 했다. 무술과 도술, 전략과 병법을 익혀 약한 자들을 돕기 위한 ‘활빈당’을 세우고 결국 모든 버림받은 자들을 위해 율도국을 건설하여 시대와 대립했다.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 본 이야말로 스트로크를 통해 실타래로 엮일 자격이 있다. "니들 내가 누군줄 알아?" "누군데, 니가." 기골이 장대한 거한이 조막만한 소년을 내려다 보며 비웃었다. 재개발 지구에 알박기 하고 있던 집 애인 거 같은데, 이러는 꼴이 우습지도 않았다. 개뿔도 없는 집안에 개뿔도 없는 놈인거 다 아니까 함부로 대하는 거 아닌가. 근데 뭐? 누군줄 아냐고? "나 활빈당이야!" "응? 뭐라고?" 뭐라고 해도 패려고 했는데, 너무 엉뚱한 이름이 나와서 주먹을 못 휘둘렀다. 대신 이 새끼가 뭐라는 건가 하는 얼굴로 귀를 기울였다. "용역 깡패 아니랄까봐 무식하기는! 활빈당 몰라? 활빈당?" "어서 들어본 거 같기는 한데.... 서울 조폭인가...?" 낯선 이름이다. 근데 분명 들어본 적이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아련한 기분도 들고? "홍길동이 이끄는 당 이름도 모르냐?" "이 미친놈이. 개소리를 하고 있었네." 거한은 자신이 괜한 고민에 열량을 소모했다는 생각에 들고 있던 소년을 집어 던졌다. "으악!" 외마디 비명 따위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거 신경 쓰면서 어찌 용역일을 할 수 있을까. 대신 거한은 우람한 대흉근을 내려다 보았다. '근손실나겠네, 새끼가.' 열량은 오로지 근육을 위해 쓰여야 하거늘. 화가 치밀어 올라서 한데 또 때렸다. 발로 명치깨를 올려 찼기에, 소년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했다. "켁, 켁." 대신 숨이 턱 막히는 기분과 함께 기침만 해댔다. "엄살 부리지 마 새꺄. 니가 인마 거기 불질러 놔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곤란했는줄 아냐? 높으신 분 왔는데 어? 불쌍해서 봐줬더니 은혜를 원수로 갚어?" "시발.... 지랄마. 뻔히 살던 집 딱지 하나 주고 강탈해 가는데 그게 은혜냐?" "계약서에 도장 찍은 건 니네 할애비거든?" "치매 걸린 사람 꼬드겨서 찍은 도장이 도장이야?" "새끼가 덜 맞았나 말이 많네." "억." 거한은 대화를 오래 이어나갈 생각이 별로 없었다. -자꾸 성가시게 굴면 묻어버려. 일단 죽도록 패서 겁 먹게 만들 속셈이었다. 형님이야 실제로 죽이고도 남을 사람이긴 했지만. 나는 아직 어린 놈 죽일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다. -끼이익 그때 밖에서 차 소리가 났다. 돌아보니, 벤츠였다. 거한은 그로서는 실로 드물게 몸을 급히 일으켰다. 그리곤 문 쪽을 향해 공손히 허리를 숙였다. "어, 잘했네." 들어선 이는 형님이었다. 이름 보다는 짝눈이란 이름으로 더 유명했는데, 앞에서 그딴 별명 불렀다가는 그날로 제삿날이었다. 아니, 제삿밥도 못 먹을 공산이 컸다. 토막내서 개밥으로 줄테니까. "사이즈가 작아서 어디 묻기도 좋겠네." 짝눈은 소년이 이삿짐이라도 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그래서 오히려 더 살벌하게 느껴졌다. 거한에게는 따박따박 대들던 소년도 입을 다물었다. 사람 여럿을 죽인 사람 특유의 피 비린내가 방 안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네? 아니, 겁 줘서...." "또 불지르면? 그땐 내 면은 어떡하고." "그...." "뭐, 들킬까봐? 걱정마. 내가 더 작게 만들어줄게." 짝눈은 히히 웃더니, 차 쪽을 향해 손짓했다. 그러자 짝눈의 오른팔이 플라스틱 박스를 들고 왔다.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리고 얘 살아나가긴 글렀어." 짝눈이 말을 마침과 동시에 오른팔이 박스 뚜껑을 열었다. "읍." 거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반대로 돌렸다. 치매 걸린 노인네, 거한이 직접 도장을 찍게 만들었던 노인의 머리가 들어 있었다. "너도 일 복잡하게 만들면 저기 넣어줄테니까, 제대로 하자고." 짝눈은 부들부들 떨고 있는 거한의 어깨를 두드렸다. 분명 손으로 두드린건데, 날붙이 느낌이 났다. 기분 탓일 터였다. 허나 가벼이 넘기긴 어려웠다. 이 인간 심기 거슬렸다가 골로간 사람이 어디 한 둘인가. 큰형님 담근것도 이 인간이란 소문이 파다했다. 아무도 뭐라 못하는 건 그저 공포 떄문이었다. -똑똑 이제 막 짝눈이 나가려는데,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문은 열려있었으니 다분히 요식행위였다. "뭐야?" 짝눈이 짜증스럽단 얼굴로 말했다. '뭐지.' 얼굴은 그랬으되, 일말의 불안감은 갖고 있었다. 밖에 세워둔 부하 놈들이 문을 두드릴 리는 없었으니까. 모르는 놈이 와서 문을 두드리게 둘 리도 없었다. 그렇다는 건.... "들어가겠소." 열린 문 사이로 웬 이상한 옷을 입은 사내가 들어섰다. 한복인가 싶었는데, 신발은 또 요새 유행하는 스타일의 운동화였다. "미친놈인가?" "홍길동일세." "미친놈이네. 치워." 긴장했던 짝눈은 손을 휘둘렀다. 그와 동시에 거한이 주먹을 내질렀다. 까딱하면 눈밖에 날 뻔 하지 않았나. 아니, 이미 났을 수도 있었다. 그렇다면 만회를 해야했다. "어...." 그래야 하는데. 어느새 한복 입은 미친놈이 자기 뒤에 서 있었다. 그게 거한이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너는 괜찮으냐." 홍길동은 거한의 뒤통수를 후려 기절 시킨 후, 소년에게 걸어갔다. 짝눈이나 오른팔은 안중에도 없다는 태도였다. 그게 짝눈의 눈에 거슬렸다. 오른팔의 눈에도 그랬다. -스르릉 둘은 사시미를 뽑아 들었다.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다. "저는 괜찮.... 괜찮은데.... 도망... 도망가세요." "네가 활빈당을 자처하지 않았느냐." "동화속의 이야기잖아요. 농담이었어요." "나는 빈자의 얘기를 농으로 치부하지 않는단다." 홍길동은 대화를 이어가면서 동시에 둘이 휘두르는 검을 이리저리 피하고 있었다. 아니, 피한다기 보다는. "이거 시발 왜이래!" "어어, 형님!" "뭔.... 이게 뭔 지랄...." 둘의 검이 홍길동의 몸만 빼고 방 안의 모든 허공을 찔러대고 있었다. 방금 전까지는 그랬는데, 이젠 아니었다. 짝눈은 자신이 오른팔의 배에 박은 칼을 내려다 보다가 이내 피에 젖은 자신의 손을 그리고 배를 내려다 보았다. 오른팔의 검 또한 자신의 배에 박혀 있었다. "내가 직접 너희들을 베는 것도 좀 그렇지 않느냐." 모로 쓰러지는 둘을 향해 홍길동이 말했다. 어느새 소년을 안아 들고서였다. "할아버지 일은 미안하게 됐다." 홍길동은 그렇게 방 안을 걸어나와 걸었다. 허공을 밟아 하늘 위로 걷고 있다는 걸, 소년은 한참이 지나서야 알았다. "아니, 아니에요. 근데 이게.... 대체...." "어디 갈데가 있더냐?" "아뇨, 저는...." "그럼 율도국으로 갈테냐? 천국 같은 곳이라고는 못해도 여기보단 살만할게다." "아, 네." "그래, 자세한 얘기는 저 친구한테 듣거라. 난 좀 바빠서." 홍길동은 부하에게 소년을 건네주고는, 번쩍하더니 사라졌다. '동에 번쩍, 서에 번쩍도 이제 모자라구나.' 소년은 너무 빠르다 생각했으나 홍길동은 도리어 불만이었다. 예전과는 달리 세상엔 나쁜놈들이 너무 많아졌다. 심지어 돈과 원한 때문이 아니라 그냥 사람을 해하는 이들조차 생겨나지 않았나. -디리링 그때 소리가 들렸다. '아, 나 바쁘다니까.' 홍길동은 그 소리를 지워버렸다. 거부할 수 없는 흐름과도 같은, 소리의 형태를 띠었던 힘도 함께 스러졌다. 플랫폼에 있던 안내자는 비명을 질렀다. "아니, 이게 대체! 이게 어떻게 가능한거야!" 플랫폼의 부름을 거부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니. 아니, 할 수 있다고 쳐도 일단 용건은 들어야 되는 거 아닌가? 인간세상으로 치면 부재중 통화가 열통도 넘게 같은 번호로 와 있는건데? -문자의 형식을 취해 보거라. 저 자에게도 갈급함은 있으니. 무능함을 숨기려 보고를 안해왔지만, 이렇게 된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지 않나. 해서 보고를 올렸더니 이런 답이 왔다. 생각해보니까 이런 수도 있기는 했다. -홍길동. 플랫폼으로 오면 당신이 바라는 것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해서 문자를 보냈다. 답은 없었다. 다시 보니까 좀 김미영 팀장 느낌이 나는 문자였다. -홍길동. 나는 당신이 바라는 것을 알고 있다. 미친.이걸 보내버렸네. -홍길동. 플랫폼에 제천대성이 있습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아무 개소리나 해보자 하고 보냈는데, 눈 앞에 홍길동이 나타났다. "제천대성은 어디있지?" "어...?" "그의 분신술이 필요하다. 빨리 고하라." 여기서 아직 없는데요 라고 하면 어떻게 될까? "그, 우선은 다른 선택을." "죽고 싶으면 계속 떠들라." "저기 일단 여기 오면.... 제 역할은 끝이거든요." "뭐라?" 홍길동은 돌연 사라진 안내자와 홀로 남은 자신을 확인했다. 제천대성은커녕 원숭이도 보이지 않았다. '미친.' 이 나이가 되어서 사기를 당할 줄이야?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할 때보다 더 열이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