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LEGENDARY
KOREAN C.V.조현정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삼신할미우주를 잇는 자.죽음에 관한 모든 권한을 포기한 대가로 모든 탄생을 관장하였다. 태초에 형성된 혼과 백이 섞여 인간의 마음이 빚어지면 그 마음을 지상의 적당한 그릇에 담는다. 그리고 윤회로 돌아온 혼백을 그 업에 맞는 그릇에 다시 담아낸다. 이승과 저승의 윤회를 이어주던 그녀는 실타래의 세계에서 서로 다른 우주를 연결 짓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비나이다, 비나이다...." 지극 정성이라는 말을 현실화한다면 지금 목도하고 있는 장면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여인과 사내는 물을 떠다 놓고 빌고 있었다. 이제 혼인의 가약을 맺은지도 어언 10년이 다 되어 가건만 아이가 생기지 않아서 그랬다. 아이. 어떤 이에게는 그저 우연히 찾아오기도 하고, 또 어떤 이에게는 원치 않았는데도 찾아 오기도 한다던데. "하늘도 무심하시지...." "예끼. 이 사람. 불경하게 그런 말을 한단 말인가." "그렇지 않습니까. 우리 부부가 벌써 10년을 이렇게 빌고 또 빌고 있는데...." "그것 참." 아내의 말에 할 말이 궁색해진 남편은 타박하던 것을 멈추고 물끄러미 담장 밖을 내다보았다. 벌써 밤이 깊은지 오래다 보니 그저 조용했다. '안사람 말마따나 10년인데....' 이 시간까지 그날 산에서 떠온 물에 달을 비추고 기도를 드린지도 10년이 지났다. 10년. 생각하면 먹먹해지는 세월이었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 동안 부부는 오로지 한마음 한뜻으로 빌고 또 빌었다. 허나 소식은 없었다. 혹 하늘이 지켜보려나 해서 낮에는 선한 일도,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딱하구나." 그 둘을 내려다보는 눈이 있었다. 삼신할미. 생을 관장하는 자.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그녀는 여전히 젊음을 유지하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존재였다. 세상에 탄생이 존재하는 한, 그녀의 생 또한 이어질 테니. "허나 저 둘에게 적당한 혼백이 없으니 이를 어이할꼬." 사정이 딱하다 해서 아무나 내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것은 법도에 어긋나는 일일뿐더러 종래에는 저 둘도 불행하게 만드는 일이기까지 했다. 고로 저 둘의 고통은 결국, 삼신할미의 것이기도 했다. 죽음의 신이 마땅히 취해야 할 악인의 목숨이 생이 다하지 않았단 이유로 지켜보고 있을 때만큼이나 아니, 어쩌면 더한 안타까움을 그녀는 느껴야만 했다. "차라리 그때가 나았지." 그때까지만 해도 삼신할미는 그것이야말로 그녀의 고통일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허나 산 너머 산이라고 했다. 필멸자들인 인간들의 말이지만, 오히려 끝이 있기에 삶에 충실한 그네들이 남긴 말 중 오래도록 살아남은 말은 제아무리 불멸의 존재라 해도 귀담아듣는 것이 좋았다. "혼백이 있는데 어찌 아이를 원치 않는단 말이냐." 삼신할미는 밤임에도 불구하고 달빛 따위는 갖다 대기도 어려울 정도로 휘황하게 빛나는 도시를 내려다보았다. 내려다보고 있노라면 정신이 혼미해질 정도로 화려했다. 단언컨대 옥황상제가 기거하는 곳이라도 저기보다는 소박하리라. 그 화려함에 취한 까닭일까. 아니면 이미 인간들이 축적해 온 지식이 그녀의 이해를 넘어간 것일까. 여하간에 저들 중엔 더 이상 아이를 원치 않는 이들이 너무 많아졌다. "영업이라는 걸 해봐야 한단 말이더냐." 예전엔 진짜 농담이었을 텐데. 그 말을 들은 황새는 차마 웃지 못했다. 아닌 게 아니라 주인이 모아 둔 혼백 더미가 수십만을 헤아리고 있어서 그랬다. 모두 저 아래에서 맘만 먹는다면 물어다 줄 아이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광고를 해볼까." 침묵 속에서 삼신할미는 혼잣말을 이어나갔다. 사실 몇몇 이의 머릿속에 들어가 육아 예능을 만들게 해본 적도 있었다. 이른바 결혼과 육아를 장려하는, 아주 은근한 광고를 해본 것인데 별 소용은 없었다. "또 앉아 있네." 어디선가 들려온, 거친 음성에 고개를 돌려 보니 죽음의 신이 서 있었다. 염라. 모두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어야겠지만 삼신할미에게는 아니었다. "할 일이 없으니 앉아 있을 수밖에." "그대가 할 일을 태만히 하니 결국, 저승도 할 일이 없어지고 있지 않나." 염라는 청하지도 않은 자리에 뻔뻔스레 앉았다. 그렇게 삶과 죽음이 나란히 앉게 되었다. 영 어색할 거 같지만, 실은 자연스럽기만 했다. 곰곰이 따져보면 탄생이 있어야 죽음도 있지 않겠나. 이 둘의 관계야말로 바늘과 실과 같다 할 수 있었다. "그럼 어쩌란 말이오. 나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소." "거참." 삼신할미의 말에 염라는 입맛만 다셨다. 그가 보기에도 삼신할미는 할 수 있는 일을 다 했기에 그러했다. 그럼에도 인간들은 더 애를 낳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어찌 될까. 사실 여러 차례 멸망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은 있지만, 설마하니 이런 식일 줄은 몰랐다. 스스로 애를 낳지 않아 멸종하는 종이 있다니. "너무 오바하지는 말고. 아직 70억도 넘게 살아있으니." "이 추세면 몇백 년 못 갈 텐데." "몇 백 년 전에 인간들이 이리 될 줄 알았소?" "그건 아니지." "그러니 몇백 년 후를 예측하는 것 또한 무의미하겠지." "달관한 듯이 말하니, 진짜 인간 같구만. 그래." 염라는 삼신할미의 말에 피식 웃고는 말했다. "그나저나 스트로크를 알고 있나?" "알고는 있지." "다녀온 적은 있나?" 억지 미소는 아니었다. 그로서도 드물게 겪었던, 흥미로운 사건이었으니까. 다른 세계의 신적 존재와의 접촉뿐만 아니라 완전히 새로운 일까지 부여받지 않았나. 반응을 보니 삼신할미는 아직 부름을 받지 못한 거 같아 묘한 우월감마저 느껴졌다. "아니, 그렇지는 안.... 아, 너는 다녀왔군, 그래." "이 몸은 다녀왔지. 그들 눈엔 내가 더 중요한가 본데. 하긴 어쩌면 앞으로 태어날 아이의 수보다 지금 죽을 사람들의 수가 더 많을 수도 있지." "재수 없는 소리는 하지.... 아." "뭐야." "나도 다녀오겠네." "타이밍이 이렇다고?" "요즘 말 쓰려고 애쓰지 말고." "오버는 자네가 먼저.... 아, 갔네." 삼신할미는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외딴곳에 서 있었다. 얼굴은 상제로부터 이 일을 위임받을 때와 비교해 하나도 늙지 않았으되 머리는 하얗게 새다 못해 분홍빛마저 돌았다. 안내인은 아이 얼굴을 하고 있는 삼신할미를 앞에 두었다. "불러서 왔소만, 왜 말이 없소." 넋을 놓고 있다가 삼신할미가 말을 하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할미라 해서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이건 숫제 아이이지 않나? "할미의 뜻이 원래 여신일세. 할머니가 아니라." 그로서는 당혹스럽게도 삼신할미는 오랜 시간 부모 되기를 바라는 자들의 감정을 읽어 온 덕에 다른 이의 생각마저 얼마간 읽어낼 수 있게 된 이었다. "아니..." "염라에게 들어 대강 알고 있으니 구태여 자네가 말할 것은 없네. 다만 책임자를 불러오면 좋겠는데. 선별이 염라의 특기라면 나는 연결이 특기라네." "어.... 책임자라고 하면....." 안내자에게는 다행이게도, 플랫폼의 주인은 굳이 아랫사람을 괴롭히는 인격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는 곧 안내자 앞에 홀연히 나타났다. "넌 가거라." 그 존재는 나타남과 동시에 안내인을 훅 날려 보냈다. 그리곤 삼신할미를 바라보았다. 말이 바라본 것이지 그 내면을 들여다보았다. 얼마간 삼신할미가 허락해 가능한 것이긴 하나, 애초에 필멸자나 급이 안 맞는 이었다면 수천 년에 달하는 이의 편린을 엿본 것만으로 혼이 떨어져 나갔을 터였다. "그대는 본질을 보는구나." 삼신할미의 말에 존재는 웃었다. "당연한 얘기를." "그래, 어떠한가. 내 특기는 아까 말한 대로 연결일세." 존재는 늙스구레한 말투를 구사하는 어린애, 삼신할미를 바라보았다. 내려다보고 있으나 내려다보는 느낌보다는 그저 마주한 느낌만 들었다. 삼신할미의 존재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방금 바라본 본질 때문이기도 했다. 켜켜이 쌓아올린 세월 속엔 천진한 아이의 얼굴에도 주름이 패일만큼 험악한 기억도 많았다. 존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었고 덕분에 더 편히 말할 수 있었다. "선별과 연결이라." "세상과 세상이 만남에 있어 단지 선별하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믿는 건 오만한 일일세." "듣고 보니 그러하군. 이번 스트로크는.... 여러 의미에서 재밌군." 재미. 재미라. 삼신할미 또한 그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에 미소가 새어 나왔다. 간절한 이들이 아닌, 그저 있는 자들을 연결하는 일이라. 유구한 세월 동안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이었다. '염라가 왜.... 들떠 있었는지는 알겠군.' 간혹 필멸자가 부러웠던 삼신할미는 마치 끝이 존재하는 필멸자가 된 것처럼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