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COMMON
KOREAN C.V.정재헌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광대웃기기 위해 존재하는 이들.자신의 슬픔을 춤 속에 감추며 스스로 낮아짐으써 모든 지친이들을 웃게하는 자들. 강자와 약자는 웃을 때 동등해진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왜, 내 이야기가 재미없어?
돌아가시기 직전까지 농을 해댔다.
울고 있는 얼굴에 대고도 그랬다.
-이거야 원. 내 인생도 별 거 없구나. 하나뿐인 아들을 울리다니. 그렇게 재미가 없더냐?
미친 양반 같으니.
아무리 광대 놀음에 심취해 있다손쳐도 죽기 직전까지 이 따위 말이나 했다는게 말이나 될법한 소리인가.
-그렇게 재미가 없더냐?
결국, 이게 유언이 되었다.
세상에.
"어이, 김씨!"
그 후로 나는 광대 노릇을 관두었다.
대신 현장 근로자가 되었다.
몸은 고되도 마음은 편했다.
슬플 때조차 웃기기 위해 발버둥쳤던 때와는 달리 지금은 그냥 일만 하면 되니까.
"네!"
"잠깐 쉬고 해!"
"아, 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요즘 사람답지 않게 진짜 열심이야, 김씨는."
"아.... 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 뿐인데요."
"그래? 정말 그런가?"
음.
무슨 소리를 하고 싶은 거지.
나는 십장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십장은 믹스커피에 설탕을 더한, 혈관 파괴자 그 자체인 커피를 내게 건네며 말했다.
"근데 왜 그렇게 표정이 어두워?"
"네? 제가 그런가요?"
"응. 쉴때도 울상이야."
"그.... 제가요?"
전혀 몰랐던 일이었다.
내 표정이 그랬나?
거울을 봐도 잘 모르겠단 생각만 들었다.
원래 이렇게 생기지 않았나.
-우우웅
그때 전화가 왔다.
누구라고 표시가 안되어 있었으나 모르는 번호는 아니었다.
광대 일을 그만 두겠노라 결심한 날 지운 번호였다.
차단까지 한 줄 알았는데, 내가 그렇게까지 독한놈은 또 못되었나 보다.
"어, 웬일이야?"
"웬일은 인마! 갑자기 사라져가지고! 우리가 얼마나 곤란한줄 알아?"
같은 팀 친구였다.
이제 전 친구라고 해야하나?
아니지.
전 동료라고 해야 맞을 거 같았다.
이건 내 생각 뿐인지 녀석은 친근하게 말을 이어 나갔다.
"이번에 자선 공연이 있어. 알지? 거기 고아원."
"아."
"거기 애들이 널 제일 좋아하잖냐. 우리가 너 안된다고 얘기는 했는데, 원장님이 그럼 안된다고 보수 후하게 주신다고 했어."
"나 이제...."
"야, 한번만 가자. 애들이야, 애들."
"난...."
"고민 해봐. 한번에 안된다고 하지말고."
"알았어."
영 곤란한 일이었다.
어떻게 거절한다....
고민하고 있으려니 십장이 말을 걸어왔다.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나봐?"
"네?"
이상한 말이었다.
"무슨...?"
"지금 싱글벙글 웃고 있는데, 뭘."
"네?"
"거울 봐. 거울."
허나 거울 속 나는 정말로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대체 왜?
그 한심한 꼴을 보고서도 이런다고?
우연이라고 믿고 싶었다.
허나 정신을 차려보니.
"잘 왔다. 애들 잔뜩 기대하고 있어. 마샬아츠 하면 너잖아. 너 하면 마샬아츠고."
"그...."
"노가다 뛰었다더니 몸이 더 좋아졌네. 오늘 하루만 부탁해. 아버지 때문에 안하겠다고 한 거 나도 알아. 곤란한 부탁 들어줘서 고마워. 내가 언젠가 이 신세는 꼭.... 갚을게."
"음."
"그래도 표정 좋네. 너 진짜 노가다가 적성에 맞나 보다."
"아니, 그런게 아니라."
아까부터 심장이 두근두근거렸다.
긴장해서는 아니었다.
설렘이었다.
불명확하지도 않았다.
난 확실히 들떠 있었다.
"자, 그럼 오늘 공연의 꽃이죠? 마샬아츠 팀입니다! 박수로 맞이해주시죠!"
소개에 맞춰 밖으로 나가 고아원의 아이들을 마주하고 나서 부터는 무아지경이었다.
대체 뭘 어떻게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기억에 남은 것이 있다면 그들의 웃음이었다.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조차 버림 받은 아이들의 웃음은 광대를 춤추게 하기에 충분한 힘이 있었다.
"또 하겠다고?"
"어.""너무 무리하는 거 아냐?"
"아냐."
그때부터였다.
남들의 웃음을 갈구하기 시작한 것은.
슬픈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어떤 날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채로 공연을 한 날도 있었다.
그럼에도 상대의 웃음을 보면, 그 상대가 가난한 자든 부유한 자든 간에 관계 없이 어딘지 모르게 힘이 났다.
-디리링
오늘도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거리 공연인데, 전에 같이 일했던 이들도 온다고 했다.
특히 십장님이.
아무래도 공연을 해야 할 거 같다고.
그래서 이제 그만 나와야 할 거 같다고 했을 때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보내 주었던 이였다.
-디리링
그에게 부끄럽지 않은 만큼의 공연을 보여야 하는데.
"여긴.... 여긴 어딥니까?"
"환영합니다, 광대."
처음 보는 곳에 끌려가고 말았다.
"이 곳에서 그대의 선택은 자유 입니다."
처음 보는 사람도 있었다.
낯설기 그지 없는 상황인데.
상대는 너무도 능숙하게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을 이어나갔다.
"잠시, 잠시만요. 저는 곧 공연이 있어요."
"그대의 선택에 따라 그대는 온전히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아니, 그 보다 제가 왜.... 이곳에 온거죠?"
말을 듣다보니 이게 어딘지 알 거 같았다.
세계적인 명사들이 다녀왔다던.
참으로 신기한 일이지만 동시에 소시민과는 관계 없다던 플랫폼이었다.
"그대는 선택 받았습니다."
"나는 그냥.... 광대인데요?"
"남을 웃게 만드는 재주가 아무에게나 허락되는 재주는 아니죠."
"나보다 인기있는 개그맨도 많은데...."
"그러나 선택된 것은 당신입니다, 광대."
"그.... 그럼 저는 무엇을.... 저는 사람 웃기는 거 말고는 재주가 없는데요."
"이 곳에서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럴 수 있는 능력도 있지 않으신가요? 그럼, 건투를 빕니다."
당황한 나를 그대로 남겨두고, 상대는 사라져갔다.
안내인이 친절하다던 후기가 많던데.
그건 역시 대단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있어서 그랬던 걸까?
"이런 개같은...."
물론 그런게 중요한 건 아니었다.
난 이곳 플랫폼에, 처음 보는 곳에 홀로 남았다.
"망할."
심지어 웃길만한 사람도 보이지 않았다.
굳이 보이는 걸 꼽자면....
'괴물...?'
전에 약에 빠졌던 동료 구할 때 봤던 거 같은 괴물이 보였다.
저것도 감정이 있을까?
그렇다면 웃겨볼 수도 있을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