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군
RARITYLEGENDARY
KOREAN C.V.김용준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스트로크를 예고했던 최초의 도미넌트들 중 하나.최초의 스트로크로 인해 여러 우주가 공명하기 시작한 이후 많은 것들이 새롭게 드러났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첫 스트로크를 위한 우주적 준비단계들이 먼 과거에 있었으며 그 결과 탄생한 존재들이 여러 세계선-syl-의 시조가 되었다. 그 시조들을 도미넌츠Dominants라고 부르며 한반도의 시조이자 첫 지배자인 단군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단군은 신과 인간과 동물의 총체이기에 그 자체로 ‘모든 우주의 공명’을 상징하는 존재이다.
무(無)의 공간.
동시에 모든 것의 공간.
원칙적으론 누구나 올 수 있는 공간이지만, 실제로 발을 디딘 존재는 온 역사를 통틀어 봐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였다.
'언제봐도.... 놀랍군.'
개인으로 태어나 하나의 신화를 이룬 단군은 주변을 둘러 보았다.
사방으로 뻗어나가는 실이 눈에 들어왔다.
실.
인간들은 저 실을 두고 인연이라는 둥, 업이라는 둥, 사랑이라는 둥 여러 얘기를 하지만 결국, 실은 실일 뿐이었다.
각각의 존재에게 이어지는 실.
그리고 그 실은 이곳 플랫폼의 중앙에 하나의 타래를 이루고 있었다.
'이게 실타래라니.'
웃기지도 않은 일이었다.
그 누구도 이걸 보고 실 따위를 떠올리진 못할테니까.
단군도 그랬다.
처음에는.
-이건....
대체.
이 곳에 들르게 된 것 또한 일종의 우연이었다.
우연이라는 말로 폄훼하기엔 중앙에 닿는 것만해도 비범한 일이지만.
단군은 비범함을 넘어 신이한 면을 갖춘 이였기에 겉모습으로 인한 현혹에서 곧 벗어나, 본질을 들여다 볼 수 있었다.
-실타래....
인연, 업, 사랑, 천륜 등으로 불리던 것들, 곧 세상은 하나의 타래였다.
실과 실은 멀어져 있을지언정 중앙에서는 서로 엮어 일체를 이루고 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이 바로 단군이 단군신화를 이루게 되던 그 순간이었다.
그로부터 파생된 모든 관계는 흩어지는 대신, 이 땅 위에 뿌리를 내리고 민족이 되었다.
작게 나마 하나의 타래를 이루었다.
'결국, 이것마저 일부라 이건데.'
이 세계선의 시조는 단군.
허나 그날 본 실타래는 이보다 훨씬 더 거대했더랬다.
아마 거기서 사방으로 뻗어나간 실들마다 하나의 세계선을 이루고 있겠지.
떠올리는 것만으로 전율이 일었다.
대체 이 세상은 얼마나 넓은 걸까.
또 대체 얼마나 많은 관계로 이루어져 있는 걸까.
'우선은.... 내 자식들부터 돌볼까.'
몇몇 세계선의 시조 중에선, 자신의 세계선을 내팽개쳐 두고 오직 진리만을 탐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세계선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걸 단군은 두 눈 똑똑히 바라본 바 있었다.
허나 단군은 그럴 수가 없었다.
신화적인 존재가 되었을지언정 본성은 어찌할 수 없던 까닭이었다.
원한다면 우주를 품을 수 있는 존재이면서도 여전히 작은 것들을 품는 존재가 바로 그였다.
'영실. 녀석이 이걸 보면 무엇을 떠올릴까.'
실타래의 실은 유기체가 아닌 일종의 신경 섬유.
이 집합은 하나의 컴퓨터라 봐도 무방할 터였다.
사람들이 양자역학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여전히 어설픈 이론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법칙이 이 기계에 의해 구현되고 있었다.
단군조차 가슴으로는 이해하되 말로 설명할 수는 없을 만치 복잡한 법칙이었다.
허나 어쩐지 장영실이 본다면 좀 다를 거 같았다.
허나 그는 바빴다.
영희라는 망가진 로봇을 봐주고 있었다.
이 또한 바라던 바였던지라 단군은 미소 지었다.
'산군은 여기서 길을 찾을 수 있을까.'
마지막 남은 산군은 지독한 상실감에 몸서리치고 있었다.
그를 에워싸고 있던 실이 모조리 끊어졌다 느끼고 있기에 그랬다.
허나 단군의 눈에는 보였다.
미약하게나마 여전히 연결된 실들이.
해태도, 산신령도 그를 도우려 애쓰고 있었다.
심지어 산군이 그토록 죽이고자 하는 말년병장, 그조차 산군의 인연이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그러니까 말년 병장의 머나먼 조상은 한번 산군의 생명을 살린 적이 있음을 단군은 알고 있었다.
'잡귀는.... 용서를 배울 수 있을까.'
저승사자가 그녀의 턱끝까지 쫓아온 마당이었다.
다행인 건, 저승사자의 마음에 관용이 있다는 점이었다.
만약 잡귀의 마음에 터럭 만큼의 용서가 자리하고 있다면 저승사자는 기꺼이 그녀를 도와 만고의 죄인에게 합당한 벌을 내려주리라.
'저 둘은 재밌는 사이가 될 수도....'
이제 단군의 눈은 실을 따라 암행어사와 탐관오리에게 닿아 있었다.
실로 어울리지 않을 거 같은 둘은 정체를 숨긴 탐관오리 덕에 어찌어찌 잘 헤쳐나가고 있었다.
의외로 탐관오리가 결정적인 순간에 도움이 되기도했다.
단군은 미소를 지은 채 다른 이를 바라보았다.
'심청은 걱정할 것 없겠지.'
상대를 긍휼히 여길 줄 아는, 밖에서 보기엔 한없이 연약한 소녀.
허나 그녀가 품은 건 다름 아닌 용의 힘이었다.
용왕과의 연결은 끊어졌으되, 이곳에서도 남은 실이 있었다.
미르.
단군의 기억 속에서도 퍽 인상적인 용이 심청을 향해 날고 있었다.
그외에도 단군의 시선을 끄는 이는 적지 않았다.
'도깨비.'
쇠락해가는 종족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깨에 짊어지게 된 작은 영웅은 특유의 호기심 어린 눈으로 험한 플랫폼을 헤쳐 나가고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다.
사명대사가 그를 돕고 있었다.
딱히 사명이 도깨비라는 족속에 대해 미련이 있는 건 아니었다.
살생을 돌이키고 싶은 승려의 눈에 제일 먼저 띈 것이 도깨비였을 뿐이었다.
물론 우연은 아니었다.
그 순간 타래가 미세하게 돌아갔음을 단군은 알고 있었다.
'무당.... 너는 좀 조심해야겠구나.'
그녀가 품은 건 장군신.
아니, 군신이라고 불러야 마땅할 터였다.
단군조차 그를 아래로 볼 수 없었으니.
허나 그런 군신을 노리는 건 다름아닌 척준경.
벌써 여러차례 충돌이 있었고 그때마다 플랫폼의 일부가 무너져 내렸다.
'전우치.... 넌 여전하구나.'
그는 구미호를 뒤쫓고 있었다.
아니, 쫓는다는 말은 어울리지 않았다.
뭐라고 해야할까.
그래, 호위라고 해야 마땅할 터였다.
구미호가 품은 사랑도 비극이지만, 전우치가 품은 것도 못지 않지 않을까.
'아니, 안되지.'
단군은 실타래를 풀어 다시 엮어주고픈 충동을 느꼈지만 애써 참았다.
수천년간 지켜본 결과, 어떤 인연은 그저 지켜보는 것이 최고라는 걸 알게 된지라 그랬다.
'넌.... 어찌할테냐.'
궁예는 하나 남은 눈으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우주를 헤아리려 함이었다.
기가찰 노릇이었다.
녀석이 살펴야 할 것은 그와 연결된 실이거늘.
처음부터 너무 커다란 꿈을 꾸고 있지 않나.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고르자브종이 궁예를 발견했다.
영민한 견왕은 궁예가 한때 왕을 참칭하다 타락했다는 걸 한눈에 알아보았다.
주인으로 섬기기엔 모자람을 넘어선 존재이지만 애초에 자기보다 못한 존재를 섬겨오던 이 아닌가.
그래서일까.
아까부터 꼬리를 흔들며 궁예를 따라가고 있었다.
만약 궁예가 겉모습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다면, 동무를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선덕....'
궁예처럼 우주의 편린을 읽을 수 있던 이.
허나 궁예와는 달리 순리를 거스르지 않던 이.
선한 여왕은 그 본능에 이끌린 채, 두 소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장화홍련은 실로 오랜만에 자기 이야기에 집중하는 어른을 마주해서 그런지 얼굴을 붉혔다.
보기 좋았다.
-넌 혼자냐?
그때 누군가 말했다.
꼭두쇠였다.
오지랖 떨다가 죽을 뻔한 주제에, 광대를 보자마자 저러고 있었다.
하기야 단군과 같은 이조차 천성을 거스르지 못해 작은 세상을 굽어 보고 있는데, 꼭두쇠라고 별 거 있겠나.
'너희는 의외로구나.'
각시탈.
올곧은, 익명의 영웅은 인면조와 서 있었다.
의외라 생각했지만 곱씹어 보니 둘다 가면 뒤에 숨은 이들이었다.
동시에 플랫폼에서 가면을 벗게 된 이들이기도 했다.
'너는 또 혼자로구나.'
멸문한 가문의 아이.
고귀한 태생이로되 남의 목을 베어 연명하게 된 아이.
이름부터 천한 망나니.
공교롭게도 그녀는 또 홀로 서 있었다.
"끼이이익!"
고개를 돌아보니 삼족오가 다가와 있었다.
단군은 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고개짓을 했다.
주인의 뜻을 알아들은 삼족오는 망나니를 향해 날았다.
얼마간 힘이 되어 줄 터였다.
혼자가 된 단군은 몇몇 위대한 존재를 떠올렸다.
염라, 삼신할미, 홍길동 그리고 이순신.
다른이들에게 품었던 감정이 대견함이나 걱정이었다면 이들에겐 기대를 품고 있었다.
모두에게 가능성이야 있겠지만....
역시나 이 넷이야말로 신화적 존재가 될 가능성이 높은 이들 아니겠나.
'누가 오건 놀라지 말아야지.'
단군은 끄응 소리를 내고는 의자에 앉았다.
어떤 말로 환영을 해야 하나 고민을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