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SUPER RARE
KOREAN C.V.최 한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미르하늘의 강이 된 작은 물줄기.용은 모든 문화권에 등장하지만 서양의 용이 처음부터 절대적인 존재로 태어나는 것과 달리 한국의 용 미르는 미천한 존재가 기나긴 수양을 거쳐 위대해진 존재이다. 그래서 서양의 용이 토벌의 대상이 되는 반면 한국의 용 미르는 높이 오르길 꿈꾸는 모든 이들의 수호신으로 숭배받는다. 오랜 수양의 상징인 여의주를 입에 물고 있다. 은하수에 사는 미르의 포효는 Syl의 진동과 공명을 상징한다.
용은 떠올렸다.
작은 개천에 떠돌던 시절을.
지나던 사람이 무심결에 던진 돌에 맞아 죽을 뻔 했던 시절을.
'그때는 원한을 품었느니라.'
더 자라나 이무기가 되었을 때를 떠올렸다.
돌이켜 보면 알량한 힘이었으되, 천지를 진동할 힘이기도 했다.
그 힘으로 용은 사람을 해하였다.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고.
또 그 중에 좋은 사람은 없었음은 확실했다.
'그때는 원한을 풀었느니라.'
후에 이를 얼마나 다행으로 여겼던가.
어떤 인간은 아무 죄책감 없이 다른 이를 해할 수 있는 반면, 또 어떤 인간은 아무 대가 없이 다른이를 도울 수 있다는 걸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야 알았다.
'그때는 지켜보았느니라.'
왜.
도대체 왜 선한 인간은 저런 일을 하는가.
도리어 악으로 갚는 놈들도 있거늘.
왜 인간은 반복해서 선함을 행하는가.
'그것은.... 잊을 수 없는 기억이니라.'
그것이 결국, 이 세상을 지탱하는 무언가라는 걸 깨달았다.
선한 인간은 그것을 모르고 행함이로되.
세상의 이치를 행하고 있음을 또한 알았다.
그러한 선한 이들로 인해 아직 이 세상이 있음을 어느 순간 알았다.
깨달음.
기다림은 길었으나, 깨달음은 한 순간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
그때 이무기가 물고 있던 검은 돌은 여의주가 되었고.
이무기를 품고 있던 물은 하늘로 솟구쳐 공동을 이루고, 이따금 물을 뿜어내는 간헐천이 되어 세상에 용이 있음을 증거하는 물증이 되었다.
이무기.
그는 하늘에 올라 용이 되었다.
"은하수다!"
어떤이는 그를 일컬어 은하수라 했고.
"저기 오로라가 있네."
어떤 이는 오로라라 했다.
"구름이 꿈틀대는군, 그래."
또 어떤 이는 구름으로 부르기도 했다.
"혹 용이 아닌가?"
드물게 자신을 알아보는 이도 있었다.
하늘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찬찬히 관조하는 이들이 그러했다.
그들 중엔 산신령도 있었으며, 쇠락해 가는 부족을 이끄는 도깨비도 있었다.
비단 깨달음이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안 또는 근처에 있음을 아는 이들.
즉 현명한 이들이었다.
'무어라 부르건 관계는 없다만....'
세상 사람들이 태산을 논한다 해서 태산이 닳는 법이 있다던가.
용 또한 그러한 존재였다.
허나 태산은 인간을 굽어보지 않는데 반해, 용은 인간을 굽어 보았다.
그의 신성이란 것은 결국, 인간에게서 비롯된 것이기에 그랬다.
그중에서도 선한 인간에게서는 도무지 눈을 떼기 어려웠다.
세상이, 그리고 그가 그들에게 빚지고 있다는 걸 모르지 않아서였다.
'너희들에게 시련이 있겠구나. 아니, 기회일까.'
용은 고개를 돌려 소리를 들었다.
자신에게 들려온 소리는 아니었다.
그가 굽어 보고 있던 산신령에게 소리가 날아들었다.
다행한 일은 그 앞에 신성한 존재가 잠시 머물렀다는 점이었다.
그의 도움으로 산신령은 잘못된 길로 빠지지 않을 터였다.
'너에게도 다른 길이 있으면 좋으련만.'
이제 마지막 남은 산군도 소리를 들었다.
공간 너머에서 그의 울부짖음이 마치 신음처럼 들려왔다.
'도깨비도 갔구나.'
저 놈은 어린 놈 답지 않게 현명한데다 용감한 놈이니 잘해낼 터였다.
-디리링
그때 용에게도 소리가 들려왔다.
구분할 수 있었다.
이것은 내 소리구나, 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미르, 환영합니다."
미끈한 고개를 돌아 보니 흰 옷을 입은 사내가 하나 서 있었다.
용은 그 사내 너머의 존재를 엿보았다.
"음."
강대한 존재이다 보니 오래 보는 건 허락되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았다.
용은 그의 본질만 보고자 했으니.
비록 시작은 미천했으나, 끝내 신성을 깨우친 그에겐 도리어 본질을 꿰뚫어 보는 일이 제일 쉬웠다.
"당신은 이곳에서 자유입니다."
"그렇구나."
저 너머의 존재는 본질적으로 선한 이였다.
이 플랫폼의 목적 또한 그리 악하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서일까?
용은 안심한 얼굴이었다.
그 또한 이 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할지, 또 누구를 만나게 될지, 어떤 일을 겪게 될 지 알지 못함에도 그러할 수 있었다.
"당신의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 다는 것만 유념해주십시오."
"그래야 맞겠지."
용은 안내인이 사라진 후에도 두려움 없이 몸을 움직였다.
그러나 망설임은 있었다.
'누구를 도와야 할꼬?'
분명 이 일을 벌인 존재는 선한 존재였다.
허나 그렇다 해서 이 곳에서 벌어지는 일이 모두 선할까.
그럴 수는 없는 법이었다.
용은 선한 의지 끝에 벌어지고야 말았던 악행의 역사를 너무나도 많이 보았다.
꼬일만한 여지가 있는 이가 뒤섞일 경우엔 특히 더더욱 그렇게 흘러갈 가능성이 컸다.
'마음에 걸리는 이가 없지는 않구나.'
용은 하늘 위로 솟구쳐 아래를 내려다 보았다.
당황한 얼굴로 사방을 두리번 거리는 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본디 빛무리가 자리했을 곳엔 그저 어둠만 가라앉아 있었다.
허나 용, 미르는 그 존재의 눈에 자리한 미약한 빛무리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네가 용왕이 종종 얘기했던 그 아이렸다.'
의인.
의로우나 무력한 여린 소녀.
미르는 찬란한 빛을 뿜어내는 여의주를 입에 문 채, 심청에게로 날아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