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SUPER RARE
KOREAN C.V.윤소라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선덕여왕하늘의 법칙과 땅을 이어준 군주.베일에 싸인 어린 시절 이후 뛰어난 의지와 지혜로 결국 지존의 자리에 오른 신라의 여왕. 첨성대를 만들어 모든 사람이 별의 길을 읽을 수 있도록 안내한 지혜로운 지배자이자 동아시아 최초의 여왕이다. 혼란의 시대 속에서 온 생애를 통해 자기 자신을 증명해 낸 이후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다. 머나먼 과거 별의 운행을 사람들에게 알린 그녀는 스트로크 이후의 세계에서도 실타래의 다중우주를 이해하고 있는 극소수의 존재가 아닐까.
-전하, 통촉하여주소서!
-자고로 여자가 왕이 된 전례는 없나이다!
진평왕은 이제 왕좌에 앉지도 못할 정도로 쇠약해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신하들은 매일 찾아와 읍소했다.
후계로 딸을 지목한 탓이었다.
-전하! 이건 안될 일이옵니다!
그 중에서도 칠숙과 석품은 강경했다.
그럼에도 진평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
풍전등화에 놓인 신라의 앞날에 선덕 만한 왕은 없을거라 확신했기에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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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께서도 참 너무 하시지 않더냐."
선덕여왕은 하늘을 올려다 보며 중얼거렸다.
칠숙과 석품은 기어코 난을 일으켰고, 아버지 진평왕은 두 오래된 가신의 목을 베어야만 했다.
반란의 연유는 비밀에 부쳤으나 그 시기로 미루어 짐작할 때, 선덕여왕이 이유가 되었음이 분명했다.
"송구하옵니다, 마마."
선덕여왕은 하늘의 별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녀의 눈에는 저 별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갈런지 다 보였다.
그리고 그 궤적이 이 인간세상에 미칠 영향까지도 어느정도는 볼 수 있었다.
반면 그녀 앞에 선 김유신은 그저 여왕의 눈동자를 보고 있었다.
아니, 눈동자에 비친 별을 두고 보았다.
'저 별이 이번에는 무엇을 말하고 있나이까.'
지금 이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첨성대.
별을 보기 위한 곳이지만, 실제로 '별'을 보는 자는 오직 하나 선덕여왕 뿐이었다.
다른 이는 그저 밤하늘에 박힌 흰 점을 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봐도 무방했다.
김유신도 그랬다.
그에게 별은 그저 별이었다.
"곧 당이 고구려를 치겠구나."
"네?"
"무엇을 놀라느냐. 별을 살필 연유도 없는 일이거늘."
"아.... 네. 송구하옵니다."
선덕여왕은 하늘에게서 눈을 떼어 김유신을 바라보았다.
'너는 통일신라를 이끌 동량이니라.'
그에 비해 자신은 어떠한가.
'나는 1년 남짓 남았느니....'
돌이켜 보면 참 어려운 시절이었다.
난이 끊이지 않았고, 백제의 의자왕은 대군을 일으켜 신라를 끊임없이 쳐들어왔다.
고구려?
북방의 파도는 말할 것도 없이 거칠게 나왔다.
진흥왕 시절에는 아무것도 못하던 놈들이 연개소문을 앞세워 핍박하는 꼴이라니.
가당치도 않았고, 이제 슬슬 흐름은 신라에게도 돌아오고 있었다.
허나 여왕은 좋은 날을 보지는 못할 터였다.
별이 말해주었다.
얼마 남지 않았노라고.
"우리는 3만 대군을 일으켜 고구려를 칠 것이니라."
"네? 하오나 전하. 그리하면...."
"안다. 백제가 쳐들어오겠지."
작년에 겨우 뺏은 7성을 앗아갈 터였다.
결국, 선덕의 공이 죄 사라진다는 얘기였다.
공에 대한 욕심이 없는 건 아니었다.
허나 하필 하고 많은 군주 중에 그녀만 별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 무슨 이유에서겠는가.
'나는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느니....'
선덕은 조금 쓸쓸한 얼굴이 되어 말했다.
"중요한 것은 김유신, 너의 명성을 지키는 것이니라."
"전하. 저를 발탁하여 중히 쓰신 것은 전하이십니다. 어찌 제 명성만 생각하겠나이까."
"나만 너를 중히 쓸 것이 아니라, 내 사촌 자매 또한 너를 중히 써야 할 것이니라."
"무슨.... 저는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
선덕은 아직 젊은 여왕이지 않나.
고작해야 중년에 접어든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후계를 논하다니?
물론 김유신은 선덕의 건강에 이상 징후가 있다는 걸 모르진 않았다.
허나 죽음을 염두에 둘 정도는 아니라 여겼다.
그래서는 안되었다.
그는 아직 이 여왕에게 은혜를 갚지 못했다.
"내가 별을 볼 수 있다는 걸 아는 자는 많느니라. 허나 믿는 자는 그리 많지 않지. 너는 그 중 하나라고 내 생각해도 되겠느냐?"
"전하, 저는 전하의 말을 늘 믿나이다."
"그래, 허면 되었다. 너는 3만의 정예병을 이끌고 고구려를 치고, 전공을 세워라."
"허나 전하...."
"그리하면 비담이 간악한 무리를 이끌고 난을 일으킬 터."
"비담이라 하였습니까? 내 지금 당장이라도 목을 베겠나이다."
김유신의 단호한 말을 들으며 선덕은 유혹을 느꼈다.
그래, 비담을 지금 베면 어떨까.
아직 역모를 꾀하지 않은 비담을 베면, 더 살 수 있을 터였다.
마음 고생과 더불어 피난도 가지 않아도 될 테니.
허나, 없는 죄를 물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건 암군이나 할 짓이었다.
"무슨 죄를 물어 베겠더냐."
"역모...."
"그는 내년에 역모를 일으킬게다."
"그...."
"너는 그때 비담을 벌하면 될 터. 지금은 그저 전공을 세우거라. 다만...."
선덕은 김유신의 흔들리는 눈을 보며 잠시 고민했다.
이 우직한 장군은 80가까이 신라를 위해 싸우다 죽을 것이며, 죽어서는 신라의 귀신이 될 터였다.
그런 이에게 한마디 정도는 보태도 되지 않을까.
별도 그거까지는 허하지 않을까.
"추호의 의심도 하지 말거나. 네 대에 신라는 천하에서 가장 밝고 유일한 별이 될 것이니."
"전하.... 전하를 도와 태평성대를 이루겠나이다."
"내가 없어도 그리 될 것이다."
"전하, 그런 말씀은 마옵소서."
"되었다. 가서, 준비하고 있거라."
"명을 받들겠나이다."
김유신은 선덕을 떠나 총총히 사라져갔다.
그러고 나서도 선덕은 잠시 별을 바라보았다.
몇번을 봐도 그녀의 죽음은 정해져 있었다.
그리 길지 않은 시간 내에 숨을 거두리라.
'이만하면.... 어려운 시기를 잘 넘겼다 할 수 있겠지요?'
아버지를 생각하고 있으려니, 귓가에 어떤 소리가 울렸다.
이 또한 모르고 있던 일은 아니었다.
'이건 또 어떤 변수가 될 것인가....'
다만 별은 소리 이후의 일을 말해주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고 보는 것이 맞을 터였다.
무언가 시공간이 뒤틀리는 느낌만 받았다.
선덕의 생에 이런 일은 처음이었기에, 조금은 두려웠다.
'나는 다만 신라를 위해 죽을 것이니.'
허나 두려움에 잘못된 선택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설령 소리의 끝에 그녀의 죽음이 있을지언정, 조금 앞당겨지는 것일 뿐이니.
처음으로 자신의 죽음을 미리 엿본 것이 기껍게 여겨졌다.
그렇게 선덕은 소리를 기다렸다.
시공간의 뒤틀림을 기다렸다.
의연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