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SUPER RARE
KOREAN C.V.정재헌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척준경산과 바다를 가르는 검.혼자서 하나의 성을 함락시켰다고 전해지는 한국 역사속 최고의 무장.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용력에 의해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는다. 그러나 무기와 흉기는 검을 쥔 사람에 의해 결정되는 것과 같아, 누가 주군이 되느냐에 따라 척준경은 영웅이 될 수도 반역자가 될 수도 있다. 스트로크 이후의 세계에서 그는 무엇이 될 것인가.
검.
길게, 곧게 뻗은 쇠붙이.
날카롭게 갈린 한면은 달을 비추고 있었다.
"모르겠군."
척준경은 그 검을 내려다 보았다.
그 앞에 선 이들.
여진족들은 그저 떨고 있었다.
하필 검의 주인을 여기서 마주치다니.
떳떳한 상황이라면야 뭐라 면피의 말이라도 붙여보겠으나 지금은 그럴 수도 없었다.
뒤로 그들이 도살한 여러 고려인들의 시신이 널부러져 있었다.
'쳐, 쳐야지?'
'친다고? 저걸?'
'그럼 가만히 서서 죽어?'
'이런 제기랄....'
여진족 무사들의 수는 기실 적지 않았다.
완전 무장한 이들만 서른을 헤아릴 정도니, 도리어 많다고 해도 좋았다.
그에 비해 척준경은 단 하나였다.
무장이라고 해봐야 달랑 검 한자루였다.
그 흔한 갑주조차 걸치지 않았다.
"모르겠어...."
허나 긴장한 여진족 무사들과는 달리 척준경은 그저 검만 바라보고 있었다.
아까부터 자꾸 모르겠다는 둥, 정말이지 영문 모를 얘기나 하면서였다.
방심하고 있다.
이 생각이 들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쳐...."
그때였다.
이때를 놓치면 안된다 싶어 명을 내리려던 여진족 장수의 목이 툭 하고 잘려 나간 것은.
"어...."
척준경은 그저 그 자리에 있었다.
여전히 검을 보며.
허나 공기가 무거워지고 있었다.
마치 피라도 머금은 것처럼 숨쉬기조차 어려워졌다.
그제야 여진족 무사들은 그들 모두 진즉에 척준경의 공간에 들어왔음을 실감했다.
"우선은 그대로 있으라."
이제 다 죽었구나.
뭐라도 하려면 달려들어야 한다.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척준경은 의외의 행동을 보였다.
검을 다시 칼집에 넣고는 품에서 웬 편지를 꺼내 보였다.
"내 이걸 대체 누구와 상의해야 할까 싶었는데.... 너희들이 좋겠구나."
상의?
고려인의 장수.
그것도 여느 장수가 아니라 검의 주인 아니, 전신이라 불리는 척준경이 여진족 무사들과 상의를 해?
이상하단 생각이 들었으나 누구도 감히 의문을 표하진 못했다.
"이자겸 대감이 편지를 보냈느니라."
말은 느릿느릿했다.
행동도 그러했다.
척준경은 마치 산보라도 나온 듯 완전 무장한 여진족 사이를 거닐며 말했다.
허나 그 누구도 빈틈을 찾지 못했다.
말하는 중간 중간 남은 호흡이 그들을 자제케했다.
언제고 검을 뽑아 벨 것 같은 느낌이 모두를 지배하고 있었다.
"내게 폐하를 폐위하고 전권을 잡자 유혹하는데.... 내 이를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그렇다고 묻는 말에 답할 수도 없었다.
애초에 묻는 이가 답을 원하고 하는 말이 아니어서 그랬다.
자문자답만이 이어지고 있었다.
"신하된 자로 불충한 짓을 저지르는 것은 심히 괴로우나.... 그렇다고 욕심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니."
"읍."
그때 압박감을 참지 못하고 무사 하나가 검을 휘둘렀다.
아니, 휘두르려고 했을 것이었다.
목이 달아나지만 않았다면.
불행한 일은 이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도 척준경이 검을 뽑아드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움직이는 것도 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신.
그들은 신과 마주하고 있었다.
"살아나리란 희망은 버리는 것이 좋으리라. 이런 말을 내 죽을 사람 앞이 아니고서야 감히 뉘 앞에서 할 수 있겠나."
신은 편지를 집어 넣는 대신, 바람에 날려 버렸다.
온전한 채로 날아가지는 못했다.
척준경이 검을 뽑아 가루로 만들었기에 그랬다.
그것이 여진족 무사들이 본 마지막 광경이기도 했다.
어느 순간 그 공간에 있던 모든 이가 가루가 되어 흩날렸다.
"폐하와 대감. 누가 내 주인에 어울린단 말인가."
척준경의 선택에 의해 나라의 주인 또한 바뀔 터였다.
그것을 가르는 기준?
무엇이 될까.
'누가 날 더 강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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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생각을 하는가."
척준경은 그를 부른 이를 돌아보았다.
대춧빛 얼굴에 커다란 창.
그가 지금껏 베어낸 이의 숫자는 더 세는 것이 무용할 지경이었다.
"언제나 내 생각은 중요치 않네."
"또 주인 타령이로구나."
"오라."
"하!"
어느새 검이 들려 있었다.
-부우욱
공간이 찢겨져 나가는 소리와 함께 검이 상대에게 쇄도했다.
보통의 상대라면 이미 갈기갈기 찢겨 나갔을 터였다.
뒤에 있던 바위처럼.
"하!"
허나 이 곳 플랫폼에서 만나는 놈들은 하나같이 범상치 않은 것들 뿐이었다.
"좋구나!"
그중에서도 눈 앞에 있는 군신은 특별했다.
이 검을 받아내다니!
칭찬이라도 해주고 싶은 심정이었다.
"망할 놈이 천지 분간도 못하는 주제에! 어찌 이리 강하단 말인가!"
마음에 안드는 건 말이 좀 많다는 건데.
괜찮았다.
-까가강
지금도 보라지.
검을 받아내는데 그치지 않고 튕겨내지 않았나.
하늘로 솟구치면서도 척준경은 빙그레 웃었다.
확실히 이번 주인은 잘 선택한 것 같았다.
이렇게 강한 놈과 마음껏 싸울 수 있다니.
"흐아압!"
찰나의 순간에 벌써 십여합이 지나갔다.
단지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생사를 오가는 싸움이었다.
그건 상대도 마찬가지일 터였다.
거기서 오는 깨달음이 있었다.
'거기서 이렇게 움직인다? 이유는.... 명확하지.'
죽을 뻔 했다.
처음엔 군신이라기에 미친놈인가 했는데.
확실히 그런 별칭을 써도 될 놈이었다.
감히 이 척준경에게 새로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경지에 있는 놈이라니!
"너만한 자가 어찌 그런 작자의 말을 듣는단 말인가!"
한창 흥취가 오르려는데 또 말을 걸어왔다.
척준경은 답대신 주인을 떠올렸다.그는 어떤 작자인가.
솔직히 모르겠다.
주인의 말이 옳은지 그른지는.
한가지 확실한 것은, 그의 밑에 있으면 계속 군신과 싸울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걸로 된 거 아닌가!'
싸움의 끝에 무엇이 있을까.
물론 죽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저 군신의 수염난 머리를 베는 날.
그 날엔 더 강해질 수 있으리라.
"닥쳐라!"
해서 척준경을 검을 휘둘렀다.
벌써 수십번 반복된 무승부를 오늘에야 말로 끝내겠다는 각오를 다지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