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SUPER RARE
KOREAN C.V.구자형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전우치세상을 속인 도사. 우주를 속이기로 결심하다.조선 시대의 도사. 길거리의 마술사로 시작했으나 세상이 그를 믿지 않았음에도 전우치는 자기 스스로를 믿고 진정한 도사로 거듭났다. 능히 세상을 바꿀만한 능력을 얻었으나 장난과 웃음을 좋아한 그는 저잣거리에 남아 세상을 속이기를 선택했다. 둔갑과 환술에 능하고 분신술을 즐겨 사용한다. 권력의 두려움을 자극해 결국 목숨을 잃었으나 죽은 후 그의 관은 비어있었다.
고속터미널 지하상가.
전성기는 지났지만 쇠락의 길을 걷는 다기엔 여전히 오가는 이 많은 장소.
11호점과 12호점 사이에 간혹 이상한 가게가 열린다는 건, 호기심 많은 이들에게는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어떤 조건에 의해 열리는지 여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건, 손님이 가게를 선택하는게 아니라 가게가 손님을 선택한다는 것이었다.
'응?... 저긴 뭐지?'
사내는 호사가도 아니고 그저 고향가는 길에 터미널로 향하던 길이었다.
시간도 남았겠다, 마침 지하에 상가도 있겠다 구경이나 온 참이었다.
그런 그에게 한 가게가 눈에 띄었다.
살 생각이라곤 없이 그저 어슬렁거리던 그였음에도 그 가게는 궁금했다.
'뭘 파는거야...?'
왼쪽 가게에서는 옷을 팔고 있었다.
구제라고 하는데, 그냥 낡은 옷과 크게 구분되지 않는 옷들이었다.
우측 가게에서는 휴대폰 용품을 팔고 있었다.
그에 반해 방금 우연히 눈에 띈 가게에서는 불상과 도자기 그외에 이상한 물품들을 팔고 있었다.
-띠리링
어디선가 들려오는 풍경 소리에 정신을 차려 보니 이미 가게 안이었다.
"어서와라."
맑은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보니 한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긴 머리에 갓을 쓰고 짧은 도포자락을 걸친 그는 부채를 살랑거리며 웃고 있었다.
무엇보다 방금 반말을 했다.
'미친 사람이구나.'
잘생기고 어쩌고를 떠나서, 너무 이상하지 않나?
사내는 의도적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못 봤다.... 못 봤어.'
이대로 나갈 생각이었다.
그때 미친 남자가 말을 이었다.
"어머니 보러 가지?"
사내는 그 자리에 얼어 붙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떻게...?'
때려 맞춘건가?
고터 지하 상가는 다들 고향가는 사람들이니까.
아니 그래도 뭐하러 이런 말을?
"선물은 아직 마련 못했고?"
말이 이어지면 이어질수록 고민은 커져만 갔다.
왜냐.
속을 들여다 보는 듯 말하고 있어서 그랬다.
살랑살랑 부채를 흔들어 가면서.
"어디보자아.... 이건 어떤가?"
그러더니만 가게 구석탱이에서 이상하게 생긴 호리병 하나를 건넸다.
얼떨결에 받고 보니 안에 뭔가 찰랑 거렸다.
"이게...?"
"아, 약인데. 어머니 편찮으시지 않나?"
"어.... 그걸 어찌...."
"자네는 그냥 몸살 감기로 알고 있겠지만, 실은 암이야."
"뭔 재수없게!"
"이거 먹으면 나아."
서울 새끼들.눈 뜨고 코 베어 간다더니 고속 터미널 지하 상가에서 이런 터무니 없는 수작을 부려?
약장수 같은 말에 화가 덜컥 나려 했으나, 몸은 생각처럼 움직이지 못했다.
확실히 몸살이 아닐 거 같단 생각은 하고 있었기에 그랬다.
'목소리.... 말투.... 내가 다 알지.'
부모 자식 사이는 하늘이 내린다 하지 않던가.
사내는 어머니의 목소리에서 무언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바 있었다.
그것 외에도 이 묘한 남자의 분위기가 사내의 몸과 마음을 가게에 묶어 놓고 있었다.
"어.... 얼만데요?"
해서 일단 물어는 봤다.
말도 안되는 가격을 얘기하면 화내고 나가려고.
"손님이 마음에 드니까, 500원만 받을까 하는데."
"잉."
근데 500원이라고?
이것도 말도 안되는 가격이긴 했다.
생각하고 있던 거랑은 완전 반대로.
"500원. 없어?"
"현금 없는데...."
"카드도 돼."
이런 허름 가게에 카드 단말기도 있어?
"아니, 근데 이게 암도 고치는 약이라면.... 이걸 왜 500원에...."
"넌 기억 못하겠지만 우리, 모르는 사이가 아니거든."
갓 쓴 남자는 부채를 살랑거리며 웃었다.
붉은 입술 사이에 드러난 새하얀 이가 참으로 매력적이었다.
다시 봐도 참 잘생겼다.
내가 이런 사람과 아는 사이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암만 정신없이 살았더라도, 이런 얼굴의 소유자를 잊을 수는 없는 법이었다."
애써도 소용없네.
자, 일단 가져가.
가서 꼭 어머니 먹이고."
"어.... 알겠.... 근데 이게. 어."
하여간에 호리병을 들고 떠밀리듯 나와보니, 가게가 사라졌다.
눈을 비비고 다시 봐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꿈이었나 하기엔 너무 실감났다.
게다가 이 호리병.
호리병은 진짜였다.
'예나 지금이나 어리버리하구만, 그래.'
가게 주인, 전우치는 안에서 밖을 내다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 대단한 인연은 아니었다.
왕께 미움을 받아 사형을 선고 받았을 때, 옥에 갇혀 신음하고 있을 때 저치가 물을 가져다 주었더랬다.
'자네가 준 건 물이지만, 내가 받은 건 생이었네.'
그 물 덕에 도력을 얼마간 회복했고, 모두를 속일 수 있었다.
결국, 그가 지금껏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모두 저 어리버리한 청년 덕이었다.
'자.... 이제 또 슬슬....'
부채를 한번 흔드니 더이상 그는 지하에 있지 않았다.
어느 높다란 산 정상에 서 있었다.
그대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해와 달 그리고 별의 움직임을 살폈다.
무언가 새로운 일이 벌어지려는 조짐이 보였다.
만약 전우치가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걸 이용해 어마어마한 것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허나 전우치는 천성이 그렇지 못한 이였다.
'재밌는 일이 있겠구나.'
천년을 넘게 살아온 도사는 그저 웃고 있었다.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이 찾아오고 있기에 그러했다.
-디리링
그런 전우치의 귓가에 현 소리가 울렸고, 처음 보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게 플랫폼이군."
처음 보는 곳이되 모르는 곳은 아니었다.
이미 예전에 엿본 적이 있었다.
"환영합니다, 도사 전우치."
"도사는 무슨, 말코라고 불러주게."
"천기를 깨달은 분에게 말코라니요"
"도사는 무릇 행실로 판단해야 하는 법. 나로 말할 거 같으면 훌륭한 말코지."
덕분에 전우치는 당황하는 대신 미리 준비했던 술을 한모금 마시며 안내자를 놀릴 수 있었다.
실제로 안내자는 적잖이 당황하고 있었다.
'뭐지, 이 인간은.'
물론 염라나 이순신과 같이 역사를 뒤흔든 인물들은 플랫폼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을 수 있긴 했다.
하지만 전우치는.
그가 역사를 뒤흔든적이 있던가.
기껏해야 저자거리에 장난 꾸러기 아닌가.
"그래, 자네 말이 맞네. 나야 한낱 저자거리의 광대지."
"아니, 그런 말은."
"하여간 이 곳에서 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것이지?"
"그.... 맞습니다."
"좋구만. 그럼 누구랑 놀아볼까."
"어.... 벌써 가면... 갔군."
안내인은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이가 없어서, 또 황당해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한편 사라진 척 하고 공간 속에 숨어 있던 전우치는 그런 안내인을 보며 낄낄 웃었다.
'우선은 너랑 놀아볼까.'
저 놈을 따라다니다 보면 재미난 이들을 계속 만날 수 있을 거 같아서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