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COMMON
KOREAN C.V.김두희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도깨비괴력을 지닌 천진한 정령.농담과 장난을 좋아하고 괴력을 지녔으나 폭력을 싫어한다. 간혹 천둥번개나 돌개바람같은 자연현상이나 아주 오래된 물건이 도깨비가 되기도 한다. 이들은 웃기 위해 존재하지만 너무 오랜 세월동안 웃음을 잃어왔다. "또 어딜 갔다오는겐가?" 무리의 연장자, 돌개바람이 물었다. 무려 장로의 격에 들어섰던 만큼 위대한 도깨비였지만, 이미 돌개바람은 신비 현상을 벗어난 지 오래 아니던가. 이제와 묻자면 그저 평범한 도깨비 축에나 들면 다행이었다. "담배나 한대 태우러 갔다 왔습니다." "담배? 자네 폐는 고래만하다던가? 무슨 담배 한대 태우는데 몇날 며칠이 걸린단 말인가." 쇠락해버린, 눈이 붉게 충혈된 돌개바람은 숫제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 앞에 선 도깨비, 부서진 총알은 고유 이름보다도 아명인 '가갸'로 불리우는 일이 더 흔할 만큼이나 어린 도깨비였다. 나이가 이제 고작 100살이나 되었을까?그 에 반해 돌개바람은 나이 세는 것을 천살이 넘으면서 그만두었을 만치 오래된 도깨비였다. "이런 담배가 아니어서요." 원래 같으면 돌개바람 앞에서 숨소리 하나 내면 안되는 나이차다 이 말이었다. 허나 가갸는 어깨를 한번 으쓱했을 뿐, 고개 한번 숙이지 않았다. 그러기는커녕 돌개바람이 들이민 유서 깊은 곰방대를, 호랑이가 산군이었던 시절에 물었던 곰방대를 툭 하고 밀쳐내기까지 했다. "이놈이! 이게 담배가 아니면 대체 무엇이 담배란 말이더냐!" "요즘 애들은.... 다들 이걸로 태웁니다." "그.... 그 요상한 물건은 또 뭐냐?" 그리곤 돌개바람 앞에 조그마한 쇳덩이를 보였다. 기껏해야 궐련 형태의 담배를 생각했던 돌개바람의 눈이 휘둥그레해졌다. "오래 사시면 뭐합니까....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시는데." "이 놈아! 그런 소리 하지마라! 그렇지 않아도 네놈 탐탁지 않아 하는 어른들이 많다는 거.... 모르느냐?" 돌개바람은 앉은 자리에서 가갸를 미워하는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아예 내쫓고 싶어하는 이의 이름을 수십개는 줏어 넘길 자신이 있었다. '청동거울, 소용돌이, 번개, 천둥 그리고.... 왕이시여.' 아마 돌아가신 왕께서도 그러지 않을까? 불. 가장 먼저 태어나, 가장 먼저 스러진 신비. 가스렌지에서 불이 피어나는 걸 보면서 왕은 더 버티지 못하였다.그럼에도 세상은 불로 가득한 것을 보면, 왕의 판단이 그리 틀리지도 않았나 싶었다. 적어도 세상에 쓸모가 없었다는 반증일테니. "또 옛날 생각하시죠?" "그때가 좋았는데 그럼 어쩐단 말이냐." "그러다 왕처럼 되시면 어쩌시려고요." "재수없는 소리하지 마라." "세상 돌아가는 꼴 계속 무시하시다가 그렇게 된다니까요?" "알았으니까.... 일단 그 담배나 보여줘 봐라. 이건 뭐 또 어떻게 피우는 거라더냐?" 돌개바람은 왕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다고 눈 앞의 가갸 처럼 천방지축으로 굴고 싶지도 않았고. 해서 애매하게 가갸를 방관하고 있는 중이었다. 다른 도깨비들에게서 일정부분 보호해주고 있기도 했고. "보세요. 이거 이렇게 하면...?" "허...." "어때요? 달콤한 향이 나죠?" "허어.... 이것 참." "거봐요. 제가 가지고 온 거 중에 마음에 안드셨던 거 있어요?" "흐음. 음." 이유?차고 넘치긴 했다. 확실히 바깥 세상엔 신비가 가득했다. 한때 신비 그 자체였던 도깨비들은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었고. "가갸 형님. 이거...." "어, 그래. 네 것도 있다." 그때문일게다. 어린 것들이 가갸를 따르는 것은. 이 놈은 두려움 없이 밖을 나돌아 다니니까. 도깨비 감투도, 도깨비 방망이도 모조리 cctv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에 걸리는 세상인데도 불구하고. "가갸." 돌개바람은 참 이상하면서도 대단하다는 눈으로 가갸를 바라보았다. 가갸는 동생들이라고 해야할까?하여간 어린것들에게 밖에서 들고 온 담배를 나누어 주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자기가 하고 있는 일에 추호의 의심도 없다는 듯, 눈이 맑게 빛나고 있었다. 자기 확신에 가득한 저 눈. '왕....' 한때 돌아가신 왕의 눈도 저랬더랬다. 그래서 모든 도깨비가 그를 따랐고, 그가 사라졌을 때 다 같이 쇠락하고 말았다. 적어도 나이든 도깨비들은 그랬다. '어쩌면 네가....' 돌개바람은 고개를 가로 젓고는 말을 이었다. "아니다. 이제 슬슬 다른 놈들이 올 시간이니.... 자리를 피하거라." "잘못한 것도 없는데요?" "혹자는 네 탄생을 두고도 쑥덕댄단다." 사라예보. 그곳에서 울린 총성은 곧 전세계를 불태웠고, 그 불 속에서 가갸 즉 부서진 총알이 태어났다. 당연히 축하 따위는 없었다. 죽음으로 가득찬 세상에서 태어난 아이는 축복이 아닌 저주라 여겼으니. 아마 그 때문이기도 할 터였다. 가갸가 바깥 세상에 뜻을 두기 시작한 것도. -띠리링 그때 어디선가 현악이 들렸다. "할배. 방금 뭔 소리 안들렸어요?" "뭔 소리? 너 또 mp3인지 뭔지 들고 온거 아니냐?"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듣거든요? 폰이 접혔다 펴지는 세상에 웬 mp3." "알아들을 소리를 해.... 어. 어? 가갸? 가갸!" 그리고 가갸는 텅 빈 공간에 도착했다. "이곳은....?" 동시에 처음 보는 것들로 가득 찬 공간이기도 했다. 넋을 놓고 주변을 둘러 보고 있으려니 누군가 눈 앞에 나타났다. 공간에서 그냥 갑자기. "안녕하십니까, 도깨비." "아.... 당신은?" "저는 안내자, 이 곳은 스트로크입니다." 말을 듣고나니, 과연 이곳이 어딘지 바로 알 수 있었다. 도깨비들이야 아무 관심도 보이지 않았지만, 바깥 세상은 온통 스트로크 얘기로 가득차 있었으니까. 가갸 또한 이 곳에 혹 올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 적이 있었을 지경이었다. 그런데 이 곳에 왔다? "아.... 여기가.... 근데 왜 제가?" "이유가 중요합니까?" "하긴. 그건 그렇습니다." 가갸의 눈이 흥분에 가득차기 시작했다. "여기선 뭐든지 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네,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그 무엇도 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걸 가르는 건...." "제 선택이죠?" "잘 알고 계시는 군요." 안내자는 가갸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스트로크에 온다고 해서 모두가 주눅이 들거나 하는 건 아니었다. 도깨비 중에서도 분명 대단한 이들이 없지는 않았다.허나 눈 앞의 이 자는.... '기껏해야 100살도 안된 도깨비가 어찌...?' 애초에 불러오려던 이도 가갸가 아니라 돌개바람이나 천둥이 아니었나? '아니, 아니지.... 최종 선택은 그분이 하신 것.... 그렇다는 건.... 설마 이 도깨비가 왕 후보인가...?' 안내자가 애써 가갸의 반응을 납득하고 있는 사이, 가갸는 말을 이었다. 여전히 눈을 빛내면서였다. "이 곳은 신비로 가득찬 곳일테니까요. 도깨비에게 그것만큼 중요한게 또 있을까요?" "그것도 맞는 말입니다. 그럼...." 가갸는 사라져가는 안내자를 바라보고 있다가, 이내 발걸음을 내디뎠다. 어디로 향하는 길인지는 전혀 알지 못했지만 괜찮았다. '어디가 됐건.... 마을 보다는 낫겠지.' 근거 없는 낙관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