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RARE
KOREAN C.V.홍진욱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해태공정함이 사라진 시대에 나타나는 신수.목에 구름을 두르고 나타나는 네 발 달린 전설의 동물. 당신이 정의롭다면 두려워하지 말라. 해태는 오직 불의한 자만을 단죄하기에. 그것은 단지 소문이었다. 아니, 괴담이었다. 때가 되면 사라질 것이 뻔한 시시한 이야기이기도 했다. 분명 그렇게 여겨졌던 때가 있었다. "야, 말이 되냐? 괴물이 물어갔다고?" "시발 내가 봤다니까? 형님.... 그렇지 않고서야 왜 연락이 안되냐고." "그니까 약 그만하라고 했지 내가. 복창해봐. 약은 빠는게 아니라 파는거다. 약쟁이냐, 우리가? 이걸로 돈 벌어서 오래오래 잘 살아야지. 이걸 왜 빨아." "나 약 끊었어, 시발!" "지랄." 이죽거리던 사내는 곧 울 거 같은 녀석의 팔을 걷어 올렸다. 그러자 작은 구멍이 뽕뽕 뚫려있는 피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나름 문신도 해놨지만 이를 다 가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만큼 여러번 찔렀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이게 끊은거야?" "그때는 끊었었다고! 그후로 한거야. 너무 무서워서 그래." "있지도 않은 괴물이 무서워서 약을 하신다? 장하다, 시발. 이 새끼 이거 일 나가기 싫어서 뺑끼 부리는 거 아냐?" "아냐, 아니라고. 그때.... 그거...." 사내는 마주한 녀석의 눈에서 공포를 읽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하여간 이 공포는 진짜 같았다. 물론 이 놈이 했던 말을 믿지는 않았다. '웬 괴물이 나타나서 나쁜 놈은 벌을 받아야 된다고 했다고?' 애들 보는 동화도 이것보단 성의있지 않겠나. 분명 약 빨고 헛것이라도 본 게 뻔했다. 문제는 같이 있던 형 하나가 사라졌다는 건데, 말이 형님이지 이미 중독자 되고 인수분해 당한지 오래다 보니 그 쪽으로도 관심이 깊게 쏠리진 않았다. 다만 짜증나는 건 이 놈이 정신이 나간 덕에 본인이 일을 나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에이. 야, 가자." "아, 네." "약은 챙겼어?" "네. 여기." "미친놈이. 짭새 뜨면 그대로 다 주려고? 좀만 들고 나와. 걸리면 좆돼." "네, 형님." 꼼꼼하게 약을 소분해서 밖으로 나왔다. 오늘따라 달도 제대로 뜨지 않아서 제법 어둑했다. 잘된 일이었다. 해 아래 얼굴 드러내놓고 다니기엔 그가 선택한 직업은 그리 떳떳하지 않았으니. 다만 꿈은 있었다. '이제 이렇게 몇년만 더 땡기면.... 외국으로 날라야지.' 평생 아무것도 안하고 펑펑 써도 좋을 만한 돈이 눈 앞에 보였다. 약이 아니었다면 감히 꿈꿀 수조차 없던 일이 코 앞에 있었다. 그러자면 신중해야했다. 사내는 클럽 안에 들어가 홀로 있는 이들을 면밀히 살폈다. 그들도 사내를 면밀히 살피다 이내 얼음이라고 입으로 말했다. 은어였다.아직 짭새들은 모르는. "10만원." "열개 줘요." "그럼 100인데?" "할인도 없어요?" "여기가 이마트냐? 할인을 찾어 미친놈이." 어수룩하게 생긴 외모답잖게 눙을 쳐서 좀 불안해졌다. 혹 형사일수도 있었다. 무능하다 무능하다 해도 우리 나라 경찰들, 생각보다 범인 잘 잡거든. "야, 너 이거 그만하랬지!" 그렇게 약을 바로 건네주는 대신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으려니 웬 놈이 다가왔다. 경찰은 아니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옷 잘입는 경찰은 없지.' 나이키 신발이나 신으면 다행 아니던가. "넌 뭐야 새꺄." "아저씨, 얘 이제 약 끊을 거니까 가요." "지랄.... 갖고 왔는데 그냥 가라고? 그럼 돈은 주고 가." "말이 돼요? 이게 얼만데. 저한테 꾼돈이에요. 이 미친놈이 남의 돈으로 약을 하네." "새끼...." 옷 잘입은 놈은 사내가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지 모르는지 끊임 없이 재잘거리며, 약쟁이 친구를 데려가려 했다. 그렇게 둘리가 없었다. "일단 좀 패라. 오늘은 깡패짓도 좀 하자." 마약 거래가 이루어지는 곳이니 만큼 으슥한 곳 아니겠나. 사람 한둘 두들겨 패고 돈 슥삭 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억." 게다가 이쪽은 나름 여섯. 저쪽은 약쟁이까지 둘이니, 그냥 하나라고 봐도 무방했다. "으억." 헌데 옷 잘입는 놈이 만만치가 않았다.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발로 차는데, 정신을 차리기가 어려웠다. "어, 어어억!" 게다가 품에 웬 스프레이까지 있어 벌써 하나가 눈을 감싸쥐고 데굴데굴 구르고 있었다. "이 새끼, 이거." 그냥 패기만 하려고 했는데. 사내는 품에서 칼을 뽑아 들었다.그것이 신호가 되어 다른 이들도 칼을 뽑았다. "어.... 야, 이건 반칙이지." 옷 잘입는 놈의 얼굴이 대번에 심각해졌다. 당연한 일이었다. 번뜩이는 날붙이는 어지간한 사람의 혼을 빼놓기에 충분했으니. "니가 자초한거다, 새꺄." 그렇게 바짝 언 놈 배에 한방 꽂고 비웃으면서 돈이나 뺏자 하는 생각으로 칼을 쭉 내미는데, -으르릉 어디선가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아니, 머리 위일까? "어.... 어어어!" 칼 들고 있던 부하 놈이 비명과 함께 주저 앉았다. 저 병신은 또 왜저래? 하면서 위를 올려다 보자, "어....." 괴물이 있었다. 곧게 뻗은 뿔에 화등잔만한 눈 그리고 듬성듬성난 삐죽한 이빨들. 그 중에서도 제일 무서운 부분을 꼽자면 당연히 눈이었다. 정상으로 보이질 않았다. 어딘지 모르게 혼탁했다. 무엇보다 내뱉는 소리도 공포스럽기 그지 없었다. '나쁜 아이는 죽어라.' 옷 잘입은 남자에게 이 말은 어딘가 이상했다. 보통 아이 뒤로 죽어라라는 말은 안하지 않나? 그러자 갑자기 칼 든 사내들이 하나 둘 토악질을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그저 뱃속부터 뒤집는 우르릉 소리로 들렸다. "컥." 그것이 사내의 마지막 대사였다. 그는 산채로 괴물의 몸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 뿐만 아니라 칼을 뽑아들었던 이들 모두 시간차를 두었을 뿐 죄다 잡아 먹혔다. "어...." 이쯤되니 옷 잘 입은 청년도 무섭기는 매한가지였다. 나쁜 놈 피해 도망갔더니 미치광이 살인마가 있더라.... 이게 지금 상황 아닌가? -넌.... 착한 아이냐? 도망가야겠다 하고 있으려니 괴물이 물어왔다. "난.... 착한 편인데." -내 말을 알아듣는군... 일단은 알겠다. 반사적으로 답한 말에 괴물은 고개를 휙 돌리더니 사라져갔다. 벌건 눈을 한 채였다. 약이라도 했나 싶었다. -띠리링 그렇게 밤거리를 내달리던 해태의 귀에 소리가 울렸다. 본디 그가 암약하던 시절이었다면 소리의 의미를 모르지 않았을 터였다. 그는 신수. 즉 신적인 동물이었으니. 허나 무엇이 정의인지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시대 속에 내던져진지 오래인 해태는 분별력을 잊은지 오래였다. 무엇보다 언젠가 한번 악인에게 속아 선인을 해한 후로는 스스로를 잊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어서 오십시오, 해태." 그런 해태의 앞에 안내자가 서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안쓰럽다는 얼굴이었다. 착각은 아니었다. '불멸의 존재가 꼭 좋은 것만은 아니지.' 특히 모든 것이 분명했던 시대에 살았던 것들은 이 모호한 시대에 이르러 불행해지기 마련이었다. 그중에서도 해태는 유별났다. 그는 처벌자였으니. 불행하다 못해 망가져버린 존재가 바로 이 해태였다. -넌.... 다행한 것은 스트로크 현상은 꽤 강렬한 경험이라는 점이었다. 요즘 들어서는 실로 드물게, 해태는 맑은 눈을 하고 있었다. "이곳은 플랫폼. 이곳에서 당신의 선택은 자유입니다. 다만 모든 선택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점을 유념하여 주시길." -이곳에 남을 수 있는가? 그런 해태는 다른 이들은 던지지 않았던 질문을 했다. 알만한 일이었으되 들어줄 수 없는 말이기도 했다. "아닙니다. 그대는 돌아가야 합니다." -괴로운 일이로구나. "이곳에서의 선택이 원래 있던 곳의 당신을 변화시킬 겁니다." -나는 변한 적이 없네. 세상이 변했을 뿐. "그럼 그 세상을 이해할 수 있을런지도 모르죠." -저 망할 세상을 내가 이해해야 한단 말인가? "여전히 세상엔 정의가 있다 믿는 인간들도 있으니까요." -어리석은 것들이지. 해태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작금 천하는 망했다고 봐야 했다. 정의롭지 않은 자들이 정의를 외치고 있는 세상이니. 문제는 해태 조차 정확한 분별이 어렵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포기했다. 허나 알고는 있었다. 미물인 인간들 중에도 포기하지 않는 자들이 있다는 것 쯤은. -마지막.... 마지막이다. 해태는 고개를 떨구고, 그러나 맑은 눈을 한 채 플랫폼을 둘러 보았다. 희박한 가능성일지언정, 이곳에서 그는 정의를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단 생각이 들었다. -마침... 내가 아는 이가 있구나. '해태는 코를 벌름거리다 이내 익숙한 냄새를 맡았다. 한때 그를 도와 정의를 행하던 이의 냄새였다. 허나 상처 받고 타락하여, 죄 없는 이를 쫓고 있는 이의 냄새이기도 했다. '마지막 산군이여. 내 일단 너를 도와보겠노라.' 해태는 홀로 남은 호랑이를 향해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