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RARE
KOREAN C.V.조현정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암행어사가장 허름한 자에게 숨어있는 힘.탐관오리를 벌하기 위해 잠행하는 자로서 왕으로부터 직접 명령을 받는 심판자. 마패를 통해 보다 높은 차원의 권한을 끌어올 수 있다. 저자거리에서 당신이 마주한 제일 허름한 자가 바로 암행어사일 수도 있다. "세금이 밀렸던데?" 덩치가 산만한 사내 하나가 맛집으로 소문이 자자한 한산 포차 앞에 서서 중얼거렸다. 말이 중얼거림이지 듣는 사람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식이었다. "네? 네? 세금이 밀렸다니요. 저는 분명 저번달에 번 돈을 절반이나...." "아, 착오가 있었군 그래." "휴우." 산만한 사내, 징수원에 비하면 쥐알만한 사내가 쩔쩔매며 하소연을 했다. 그러자 징수원이 고개를 끄덕였고 그제야 분위기가 좀 풀어지는 듯 했다. 식당 주인은 재빨리 눈짓을 해 아내로 하여금 한산 포차의 자랑 브라만 육회와 지구산 가재미 술찜, 곱창 구이등을 내오게 했다. '술은?' '삼해.' '하이고....' '어쩔 수 없잖아!' 그 와중에 뭐라도 아끼려는 아내에게 눈으로 욕을 하고 있으려니 징수원이 말을 이었다. "전달이 안됐나? 이제부터 이 거리의 세금은 70%일세." "네? 70%요? 아니, 그건.... 그건 너무...." "말을 가려하게. 나는 손님으로 온 게 아니니." 징수원은 자신과 함께 온 이들을 턱으로 가리켰다. 사또의 양복쟁이들이 줄줄이 서 있었다. 징수원 하나도 감당키 어려운데, 저들이 나서면 어떻게 될까. 깔끔하게 총맞아 죽으면 다행이었다. 아마 사거리 신호등에 매달려 죽을 때까지 매질을 당하게 될 터였다. 그것만은 안될 일이었다. 허나 70%? 이것도 안될 일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순이익이 아니라 매출에 세금을 매겨서 그랬다. 이건 그냥 문을 닫으라는 말과 같았다. '이걸 시발 어찌 말을 해야.....' 그렇다고 또 다시 하소연을 시작하기에는 양복쟁이들이 차고 온 권총이 두려웠다. 권총이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큰 물건들 아닌가? 한발 한발 쏘아질 때마다 가게는 물론이거니와 안에 있는 손님들.... '손님? 아니, 저 양반은 왜 이 사달이 났는데 안 나가고 저깄어? 아니, 손은 왜 들어! 그러다 어? 뒤지면 어쩌려고?' 징수원과 양복쟁이 아니, 포졸들이 올 때면 거리가 한산해지기 마련이었다. 어지간히 힘 있는 양반 아니고서는 거리를 내다니기 조차 어려웠다. 괜히 흠이라도 잡히는 날에는 붙잡혀 가 시청 앞에서 치도곤을 맞게 되니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 주문 안받나?" 그런 생각과는 별개로 안에 들어와 있던 손님은 불만 어린 눈을 한 채 외쳤다. 암만 봐도 조그마한 소녀인데 어디서 저런 배짱이 샘솟을까? 아니, 배짱이 좋은 게 아닐 터였다. '정신이 나간 사람이구나.' 그렇다면 더더욱 좋지 않았다. "70%라는 세율에 왜 말이 없나?" 징수원은 식당 주인을 돌아보더니, 뒤에 서 있던 포졸 하나에게 턱짓을 했다. 그러자 포졸이 손님에게 뚜벅뚜벅 걸어갔다. 사또가 포졸들은 필수로 헬스장에 드나들게 한다더니 몸이 좋았다. 그 말은 위압감이 더더욱 심하단 뜻이었다. "이봐. 험한 꼴 보기 전에 나가지 그래?" "밥 먹기 전에는 나갈 생각이 없는데?" "없는데? 이 쥐톨만한 놈이 말이 짧아?" "그러는 너야 말로 남 밥 먹으러 왔는데 시끄럽게 굴고 지랄이야, 지랄이." "허." 그래서 포졸은 대단히 황당했다. 지금 이 여자애가 뭐라고 하는거지? 지랄이라고? '어머니....' 포졸이 된 이래 한번도 겪어 본 적 없는 일이었다. 어지간히 지체 높은 양반 아니고서야 덮어놓고 패도 사또가 다 막아주지 않던가. 근데 이 어린 애가 지금..... "여기 주문 안받아요? 대머리 때문에 그래요?" 와.... 선 넘네. 포졸은 이제 황당한 얼굴이 되어 징수원을 돌아보았다. 아닌게 아니라 징수원은 대머리였다. 그리고 평소에 그것을 별로 자랑스러워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드러내고 다니는 것은 감히 누구도 앞에서 웃지 못하는 사실을 즐기기 위함이었다. 헌데 대머리라고? "일단 저 년부터 족쳐라! 피를 보면 여기 주인도 입을 열 생각이 들겠지." "아이고, 나으리! 손님이 무슨 죕니까. 제가, 제가 내겠습니다!" "시끄러! 이제 저년과 나의 문제야!" 당연히 불호령이 떨어졌다. 포졸들은 상대가 조그마한 여자아이라는게 좀 마음에 걸리긴 했지만, 오늘 시원하게 패면 반드시 보상이 있을 거란 생각에 달려들었다. 총을 꺼내들지 않은 것으로 됐다고 여기고 있었다. -찌이익 그때 어린 여자애가 몸을 일으키더니, 검정 장포 어깨 품에 붙어 있던 부직포를 뜯었다. "다들 멈춰라." 그리곤 나지막히 말했다. 그것은 곧 언령이 되어 포졸들의 발을 묶었다. 아니, 말을 꺼내기 전 사라진 부직포 아래 모습을 드러낸 황금 마패를 보자마자 다들 발을 멈춘지 오래였다. "암행어사 출두야." 소녀는 아니, 암행어사는 이번에도 나지막히 말했다. 그러자 마패에서 양복쟁이들이 공간 이동 되어 뛰어 나오기 시작했다. 얼핏 보면 포졸들과 같았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소름이 돋을 터였다. 이쪽에서 소환된 이들은 다 똑같이 생겼으니. "어어.... 여, 역졸.... 버전 2102년...." 징수원은 뭔가에 홀린 듯 뒷걸음질을 쳤다. 별로 소용은 없었다. 이미 역졸 중 하나가 그의 뒤에 있었으니까. 포졸들은 전의를 상실해 싸울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그저 권총을 부리나케 던지고 무릎을 꿇고 징수원이 끌려 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키가 크구나. 좀 작게 만들어라." 어사는 어느새 의자에 앉아 있었다. 안그래도 징수원이 덩치가 커서 눈 높이가 안맞아도 한참 안맞는다 싶었는데, 어사의 말 한마디에 역졸이 징수원의 무릎을 부쉈다. "으, 으아아아!" "작게 만들랬지 부수랬느냐?" "보통 부수지 않습니까?" "사실은 그러고 싶었다. 괜히 해본 말이니라." 어사는 그렇게 바닥에 나뒹굴게 된 징수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조용. 팔이라도 성하고 싶으면 조용히 하거라." "네, 네." 무릎이 부숴진 와중에도 징수원은 초인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신음을 참았다. "세금 70% 는 누구의 머리에서 나온 생각인고?" "사, 사또께서." "그 사또는 어디에 있는고?" "루, 룸살롱에 있습니다." "내가 그 천박한 곳에 가야 겠느냐?" "아, 아닙니다. 뭐, 뭣들하느냐. 어서 가서 모시고.... 아니, 잡아오지 않고!" 그래.어사는 이제 막 사또를 붙잡아 처벌할 참이었다. "근데 여기는 어디냐." 그때 귀에 뭔 소리가 들린다 싶더니 이상한 곳에 끌려와 버렸다. 눈 앞에는 처음 보는 놈이 왱알대고 있었고. 짜증나서 일단 패고 물으려 했으나 이상하게 아무것도 소환이 되질 않았다. '좆됐나? 앙심을 품고 납치한건가? 안되는데?' 속으로는 오만 생각이 다 들었지만 우선 겉으로는 위엄있게 물었다. "플랫폼입니다." "무슨 플랫폼?" 진짜? 무슨 플랫폼인데? 기차역을 말하는 건가? 그거 고대 유물 아니었나? "스트로크 현상에 대해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기록에서는 봤다. 아.... 이게 설마." "네, 그 스트로크입니다." "아." 그래, 그런 일이 있다고 들었다. 나쁜 놈들 잡아 쳐넣으나 신경 쓰지 않았을 뿐. 또 자기와는 별 상관 없는 일이라 여겼다. 암행어사가 물론 대단한 직업이긴 하지만 이 성계에만 해도 훨씬 높은 이들이 많지 않던가? 심지어 역졸들로는 터럭만큼도 해할 수 없는 진짜 나쁜 놈들도 많았다. 근데 왜... "그대처럼 열심히 악인을 처벌한 이는 없다고 들었습니다. 이곳에서도 악인을 심판할지 아니면 한패가 될지 아니면 방관할지는 그대의 선택입니다." "우선 질문이 있다." "네, 얼마든지요." "소환이 안되는데?" "그럼에도 심판하는 것도 그대의 선택입니다." "허어." "그럼 저는 이만." "아니, 가면 안.... 아, 갔네." 어사는 자신 말고는 아무도 없는 벌판에 선 채 어깨 춤에 마패 문양을 매만졌다. 파직 하더니 뭐가 나오긴 했다. 먼지 정도? "이런 씨이발....." 어쩌라는거야 하는 생각만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