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RARE
KOREAN C.V.엄현정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산신령지상에 남기로 한 신.한 노인이 삶의 비밀을 깨달았다. 죽음 앞에서 선택의 기회를 얻게 된 그 노인은 모든 것을 잊고 떠나는 대신 남겨진 이들을 보호하기로 결심한다. "후회하지 않겠느냐." 초로의 노인은 자신에게 후회를 물어 온, 붉은 장포에 투명한 눈을 가진 이를 올려다 보았다. 새하얀 얼굴엔 주름 한점 없었고, 비단같이 깨끗한 머릿결은 한데 모여 단정하게 위로 묶여있었다. 그럼에도 도통 자신보다 어리단 생각이 들지 않았다. 굳이 따지자면 표정 때문일까. 도통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의 세월이 느껴졌다. 투명한 두개의 유리알이 총명한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눈가리개처럼 생겼으나 눈을 가리지 않으니 저것이 깨달은 자들의 특징인가. "네." 노인은 저도 모르게 존대로 답했다. 상대는 그러한 존대를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네'라는 대답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잘 생각하거라. 그대가 거절하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여야 하느니." 상대는 손가락을 들어 하늘을 가리켰다. 원래 같으면 그저 해가 떠 있고, 구름이 노닐고 있어야 할 푸른 하늘엔 구멍이 나 있었다. 노인이 죽기 전 생의 비밀을 깨달았기에 그러했다. 그 순간 천둥이 쳤고, 천둥과 함께 나타난 사내를 마주하게 되었다. "저는...." 노인은 하늘에 난 구멍을 통해 하늘 위의 하늘, 천외천이 있음을 확인했다. 구름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얼굴이 여럿이었다. 어느것 하나 범상한 것이 없었다. 도리어 눈 앞에 나타난 상대가 평범해 보인달까. '저기가.... 선계로구나.' 하늘 아래에서 얻은 깨달음조차 이만할진데, 저 위로 가면 대체 어떤 것을 볼 수 있을까. 곧 죽을거라 여겨 텅 비었던 노인의 마음에 욕심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와 함께 시야는 흐려졌다. 노인은 이내 고개를 흔들었다. "저는.... 이 땅에 남아 사람들을 돌보겠습니다." "귀한 선택이니라. 허나 질문을 달리해 묻겠노라. 사람들은 때로 은혜를 원수로 갚기도 하느니라. 그래도 괜찮겠느냐?" "네. 저는 괜찮습니다. 이 땅에 남겠습니다." "내 네 선택을 존중하마. 다만" 단서를 다는 상대의 말에 노인은 고개를 들었다. "언젠가, 너의 선택이 너를 더 큰 곳으로 인도하더라도, 그리고 설령 그 곳이 네가 생각치 않은 곳이더라도, 진정 깨달음을 원한다면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 이미 나는 하늘 위의 하늘을 눈으로 보고 있다. 어찌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삶의 전부일까.  그간 쌓아온 것이 감사할 일이라면 이후의 깨달음엔 나의 노력이 더 필요할 것이다. "네. 그리하겠습니다." 노인의 말에 상대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눈 앞의 유리틀을 만지작거렸다. 그러자 상대의 눈을 가린 유리가 빛을 발한다 싶더니 하늘이 울렸다.  -우르릉 동시에 천둥소리가 있었고, 하늘은 닫혔다. 그리고 노인은 그가 그가 있던 산의 신령, 즉 산신령이 되었음을 깨달았다. "즐거운 나날이었지." 어느 갸륵한 효자의 발길을 인도해 산삼을 캐게 했던 일. 굶주리던 모자가 잠든 틈을 타 열매와 날짐승으로 구호했던 일. 함부로 인명을 살상하던 호랑이를 제거했던 일.... 은 즐겁지만은 않았더랬다. 허나 대체로 보람있던 세월이었다.원했던 대로 남겨진 이들을 보살필 수 있었으니. -쾅 이변이 생긴 것은 얼마 전이었다. 한무리의 사람들이 오는가 싶더니 터널을 뚫네 어쩌네 하다가 이내 폭약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쾅 처음엔 터널이라는게 당최 뭘까 싶었다. 또 인간들이 폭약을 터뜨려봐야 이 거대한 산에 무슨 상해를 줄 수 있을까 싶었고. -쾅 허나 산신령은 이제 인정해야만했다. 자신이 인간을 무시하고 있었음을. -쾅 산은 신음하고 있었다. 그들이 낸 구멍이 작지 않아서. 또 그리로 지나는 '자동차'들이 적지 않아서. 무엇보다 산이 품고 있던 날짐승들이 갑자기 뚫린 터널과 도로에서 죽어 나가서. "아..... 안돼...." 산이란 무릇 자신이었다. 산이 무너질 때마다. 또 그 구성원이 짓밟혀 죽을 때마다. 산신령 또한 죽어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거기서 멈추었다면 버틸 수 있었을 터였다. 허나 인간들은 산을 그대로 두지 않았다. -으르르르르 산을 깎아내고, 기어코 거기에 건물을 지었다. 함께 산을 지키던 산군은 무얼 했냐고? 그는 죽었다. 오래전에. 그 뿐만 아니라 다른 산군들도 무자비하게 죽었다. 그나마 산신령은 인간들이 산 자체를 죽이지 못하기에 살아 남았다. "아.... 아아아...." 허나 죽어가고 있었다. 이제 더 도울 인간도 없는 듯 했다. 인간은 산신령의 도움 없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게 되었으니. "후회 하는가." 어느날 하늘이 열리지도, 천둥이 치지도 않았는데 수백 아니, 수천년 전에 만났던 이를 만났다. 꿈이었을까? 모를 일이었다. "조소하러 오셨습니까." "조소라니. 나는 그저 그대의 마음이 궁금할 뿐이니라." "이 지경이 되었으니.... 후회는 됩니다." "다시 하늘로 가겠냐고 물으면 어찌하겠는고?" "도울 수 있는 이가 도시에는 많다 들었습니다. 올라가는게 지금 처지 보단 나을 것이나.... 할 수 있다면 이 곳에서 더 많은 일을 하고 싶습니다." 산신령의 아니, 노인의 말에 사내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노인은 알지 못했으나 사내에게는 실로 드문 일이었다. "갸륵하도다. 너는 저들이 밉지도 않단 말이더냐?" "저들은 저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하구나." 사내는 그리 말을 하고는 돌연 위를 올려다 보았다. 사내의 머리 위에는 과거에 보았던, 하늘의 구멍이 있었다. 노인은 연유를 알지 못했다. "곧 어떤 소리가 있어, 너를 인도할 것이니라." "네." 허나 사내가 하는 말이 진실이라는 건 알 수 있었다. 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에 가면 네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질 것이니라." "어떤 기회인지 여쭈어도 됩니까?" "원하는 바가 이루어질 수도 있겠지." "아, 그럼...!" "허나 지금보다 못해질 수도 있느니라." "여기서 더 말입니까?" "그것도 어려운 일이긴 하겠구나. 여하간.... 네 마음이 이리 올곧다면 내 별로 걱정할 것도 없겠구나." 사내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노인의 귓가에 소리가 울렸다. 난생 처음들어 보는 소리였고, 노인은 이것이 사내가 말한 소리임을 직감했다. "산신령이시어, 환영합니다." "아, 네." 덕분에 놀라지 않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공간, 처음 보는 존재를 마주하고 있음에도 그랬다. "이 곳은 플랫폼. 이 곳에서 그대는 자유입니다. 다만 그대의 선택에는 늘 대가가 따른 다는 것만 유념하시면 됩니다." "알겠습니다." 두려움도 있었다. 허나 희망도 있었다. 그의 바람이 이루어질수도 있다고, 사내가… 아마도 지극히 높으실 그 남자가 말했으니까. "내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건투를 빌죠. 플랫폼은 그대와 같은 이를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