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RARE
KOREAN C.V.김두희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저승사자새로운 세계로의 안내자.삶의 끝에서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존재. 산 자에겐 두려움의 대상이나 죽은자에겐 동반자가 되어주는 양면성을 가졌다. 인간이었을 때 의사였던 한 남자는 자신의 환자가 끝까지 삶을 붙잡도록 도왔다. 그러나 어떤 노력으로도 죽음을 피할 수 없음을 사무치게 배운 후, 그는 결국 삶을 위해 노력하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도록 돕는 역할을 받아들였다. "김선웅." "저, 저리가. 저리가!" 저승사자는 창백한 얼굴을 더 도드라지게 만들어주는 검은 정장을 입은 채 입을 열었다. 얼굴은 하얀데 입술은 연지를 바른 듯 붉어서 괜히 눈에 띄었다. "김선웅. 17세. 오토바이를 타다가...." 저승사자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김선웅의 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앞을 보니 김선웅의 상체가 있었다. '살아날 수 없다.' 여러 죽음을 보아왔다. 의사였을 적에도, 저승사자가 되었을 적에도. 그 중엔 피할 수 없는 죽음이 적지 않았다. 아니. 모든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단지 때가 다를 뿐. 그럴 바엔 더 살리겠다고 애쓰는 것 보다, 죽음 그 자체와 그 이후를 돌보는 것이 더 의미있지 않을까. '그렇게 말했지. 대왕님이.' 감언이설이었을까? 알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그런 염라의 말에 동의했고 지금껏 충실히 그의 일을 이행하고 있었다. "트럭에 치여서 사망. 00월 00일 00시." "안돼. 안돼.... 난 이렇게.... 갈 수 없어." 17세의 소년은 절박한 얼굴이었다.실제 얼굴이야 이미 핏기가 사라진 정도가 아니라 표정도 사라져 있었지만. 영혼 만은 앳된 얼굴 그대로다 보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타까운 마음이 절로 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어차피 한 70년 일찍 가는 거 뿐이다." "70년이라고 이 시발놈이!" 물론 저승사자에게는 별 의미가 없었다. 70년이라는 말도 놀리려고 한 말이 아니라, 그저 진심을 말했을 뿐이었다. 정말 인생은 덧없지 않던가? 왕도 거지도, 장군도 졸개도 죽음은 피할 수 없다. 단지 그 죽음에 이르기까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중요할 뿐. '그 과정조차 이승과 저승의 관점은 다르지.' 정확히 말하면 염라의 관점이 달랐다. 어떤 왕은 거지 발싸개 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고, 어떤 거지는 그 어떤 왕보다 존귀해졌다. "어, 어어어. 놔, 이거 놔!"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발버둥 치는 영혼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었다. 그럴만 하지 않은가. 아직 이 자는 저승을 보지 못했으니. 누구에게나 죽음은 단 한번 뿐이니. "괜찮다. 네가 갈 곳도 다 사람 사는 곳이다." "무슨.... 이제 죽었는데!" 영혼의 눈은 토막난 자신의 몸을 들여다 보고 있었다. 의사도 아니면서 저리 끔찍한 시신을 잘도 보고 있구나 싶더니만. "우, 우우욱." 토악질을 하기 시작했다. 물론 육신이 없다보니 토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시늉만 가능할 뿐이었다. 저승사자는 그런 영혼의 등을 두드려주려다, 의미 없다는 생각에 그저 손을 잡아 끌었다. 그러자 하늘 높이 향하던 둘의 행로가 후두둑 뒤집혔다. "세, 세상이 거꾸로...." "그렇게 보일게다. 익숙해지기엔 시간이 오래 걸리니 괜히 나와서 돌아다닐 생각 말고 날 따라 오거라." "나와서 돌아다닐 수가 있…다구요?" "있지. 저기 저것들이 보이느냐." 저승사자는 손을 들어 거꾸로 된 세계를 방황하고 있는 무언가를 가리켰다. 사람인가? 아니, 사람을 닮기는 하였으되 너무 끔찍했다. 팔척을 넘어가는가 싶더니 한순간에 쪼그라들어 쭈글쭈글해졌다. "저게...." "나 때문에 숨은 것이다. 딱히 잡을 만한 놈도 아니거늘.... 하여간 도망나오면 필시 저렇게 되니 나오지 말거라. 누누이 말하지만 저승도 살만한 곳이야. 아니, 좋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이승보다 낫다." "개똥 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말도 있는데요." "그 말 만든 놈도 저승에서 잘만 산다." 영혼은 저승사자의 손을 계속 부여 잡고 있던 덕에 빠르게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자, 이게 삼도천이다." "삼도천.... 저건.... 저건 뭐에요?" 삼도천의 기운을 담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완전히 그리움을 잊으려면야 저 강을 건너야 하겠지만. 이렇게 저승사자의 손을 잡고 있는 것 만으로도 잠시나마 이승을 잊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금 삼도천에는 거대한 명물이 생겨서 눈길을 끌었다. "저건...." 염라 대왕이 만든 배. 뭐라고 하라고 했더라. "저승 1호다." "네?" 어쩐지 말하는 이로 하여금 부끄럽게 만드는 이름이었다. '영원히 살면서 작명 센스는 안 키우셨나.' 저승사자는 잠시 얼굴을 숙이고 있다가, 말을 이었다. "저거 덕에 대기 시간이 줄었어. 여기 기다리는 시간이 늘면서 도망가는 놈들도 늘었는데 잘 된 일이지. 어.... 이거. 뭐지." "왜, 왜요." "안되는데. 지금.... 어...." "왜요. 무섭게." "너.... 내가 없어도 어디 가지 말고 여기 있거라. 절대로 어디 가면 안돼. 알겠지?" 평안히 기다리려는데 귓가에 소리가 들렸다. 이 소리 자체는 처음이지만 소리에 대해 모르는 건 아니었다. 아닌게 아니라 염라도 불려갔다오지 않았나. 그 후로 기분이 좋으신지 자꾸 웃어서 기절하는 영혼이 늘어났을 지경이었다. "큰일이다." 결국 저승사자는 스트로크에 의해 플랫폼에 도착했다. 영혼의 손을 꽉 잡고 있던 손은 역시나 비어 있었다. '그 녀석, 설마 이승으로 돌아가진 않겠지.' 일부러 비참한 몰골의 잡귀를 보여줬다. 효과가 있기를 바라는데, 누군가 다가왔다. "저승사자. 죽음의 참된 의미를 고민하는 자여." "저는 여기 왜 온 것입니까." "선택되었을 뿐입니다. 그대에게 도움이 될 수도 혹은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겠지요." "방해가 되는 거 같은데...." 저승사자는 두고 온 영혼 생각에 정신이 없었다. 허나 안내자와 대화를 나누다 보니, 걱정해야 할 사람은 영혼이 아니라 자신이라는 걸 깨달았다. "여기.... 안 계시는구나." "염라 대왕 말입니까? 네, 그 정도 되는 분을 계속 붙잡아 두기엔 플랫폼도 좁지요." "허면 나는 이곳에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 "그것은 알려줄 수 없습니다. 그대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으니." "허." 주변을 둘러보아도 염라의 기운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음이 임박한 영혼이 있는가? 그것도 아니었다. 적어도 이 안에는 죽음이 없는 듯 했다. "그럼 무운을 빕니다, 저승사자." "아니, 잠시만! 나는 빨리 돌아가야 합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이런, 가버렸군." 영혼이 걱정이었다. 잡귀가 되면 어쩐단 말인가. 또 그 잡귀를 자신이 잡으러 가면 어쩐단 말인가. 그보다 찝찝한 기억이 또 있던가? '아니, 아냐. 그보다.... 난 대체 여기서 어떻게 해야 나가는 거지?' 저승사자는 주변을 둘러보다가, 이내 걸음을 걷기 시작했다. 어디를 향해서가 아니라 가만히 있기엔 너무 불안해서 그랬다. '망할 염라님. 나 좀 도와주시죠.' 염라가 있다면. 아니, 흔적이라도 있다면 안심이 될텐데. 저승사자는 주인 잃은 강아지처럼 두 팔로 몸을 안은 채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