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RARE
KOREAN C.V.김두희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인면조위대한 환생을 돕는 조력자.전설 속에 등장하는 인간의 얼굴을 한 새. 신선의 모자를 쓰고 있다. 누군가가 진리를 깨닫고 죽으면 인면조의 안내를 받아 낙원에서 눈을 뜬다.
-우르르릉
뭘 모르는 인간들은 천둥이다 뭐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그리 만만한 소리가 아니었다.
방금 들려온 것은 다름 아닌 하늘이 열리는 소리.
인간의 얼굴을 한 새, 인면조는 소리가 난 곳을 바라보았다.
'누구지?'
인면조의 얼굴에 잔잔히 의문이 번져 나갔다.
너무 오랜만이었다.
오랜만이라는 말을 쓰는 것조차 어색할만큼 수 없이 많은 세월이 흘러가버렸다.
더이상 인간들은 하늘을 올려다 보지 않았고, 디디고 선 땅 밑을 탐구하려 들지 않았으며, 무엇보다 자기 내면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다.
그저 연구실이라 불리는 곳에서 컴퓨터와 현미경 앞을 서성일 뿐이었다.
'별일이로군.'
하여간 하늘이 열렸다면, 내려가야 했다.
한때는 신선이 될만한 재목이 너무도 많아 스스로 땅에 남기로 한 이들조차 있었더랬다.
허나 이젠?
새로운 신선이 들어온지가 벌써 수백년도 더 지났다.
"제발.... 후배님 좀 모시고 와주게."
인면조가 그런 생각을 하며 막 날개짓을 하려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데리고 왔던 신선이 말을 걸어왔다.
불쌍한 이였다.
아니, 신선이 된 시점에서 불쌍하다는 말이 썩 어울리지는 않겠지만.
어쩐지 인면조는 그를 볼 때마다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다.
"청소하기 싫어 그러는 거라면.... 너무 불손한 거 아니오?"
"청소도 하루 이틀이지! 벌써 400년이야, 400년! 조선이 망한지도 벌써 100년도 넘게 지났네!"
"내가 시켰나. 왜 나한테 화를 내고 그러시나."
"자네 말고는 누가 들어주겠나. 역정이나 내시지."
"이틀인가 밖에 차이 안나는 이도 있지 않소?"
"그 새끼 생각하면 타락할 거 같으니 관두게."
"여하간 가겠소."
이틀.
딱 이틀 차이로 막내가 된 그는 말마따나 수백년을 청소만 하고 있었다.
남들은 도 닦고, 세상 내려다 보고 하는데.
'불쌍한 놈.'
이번에 올라오게 될 이는 또 얼마나 막내 생활을 해야할까.
천년?이천년?
알 수 없었다.
그 생각을 하니까 이게 또 별로 좋은 일도 아닌가 싶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히 날개짓이 느려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봐야 인면조는 신수이지 않나.
인계의 기준으로 보면 쏜살보다도 빨랐다.
'응?'
그렇게 도달한 곳엔, 낯익은 이가 앉아 있었다.
초로의 노인.
300년 전인가?
그때 하늘로 올라갈 것을 거절하고, 땅에 남은 이었다.
산신령이 되었던 이.
그때도 특이한 결정이긴 했지만, 지금와서는 거의 최악의 선택이었다.
내면을 돌아보지 않게된 인간들은, 주변을 파괴하는데 별 망설임이 없어져 버렸기에 그랬다.
'설마.... 저 이가 또...?'
그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해보면 무리도 아니긴 했다.
산이 깎여 나가고, 산짐승이 죽어나가고, 동료이자 친우인 산군들이 모조리 쓸려나가던 세월은 하늘에서 내려보기에도 끔찍스러웠다.
'아니, 저건....'
인면조는 충분히 가까이 다가가고 나서야 비로소 또 다른 이가 산신령 앞에 서 있음을 깨달았다.
불진인지 뭔지 모를 것을 몸에 두른 이는 짤막한 안경을 끼고 있었다.
여상한 신선처럼 보이지만, 인면조는 알 수 있었다.
'단군....'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들릴만한 거리였지만 그저 적막 뿐이었다.
단군의 힘이 이 근방을 메웠기 때문일 터였다.
해서 인면조는 산신령의 표정을 통해 상황을 유추하는 수밖에 없었다.
처음엔 자조섞인 미소를 짓더니 이내, 단군 앞에 고개를 조아리고 있었다.
단군은 그런 산신령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언가 또 기특한 소리를 한 모양이었다.
"어."
그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산신령은 옆으로 쓰러졌다.
죽었나?
죽음을 선물한건가?
순간적으로 이런 생각부터 들었을 만큼이나 산신령의 생은 고된 것이었다.
"이리오거라."
"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단군의 목소리가 비로소 들려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자신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어쩌겠나.
말을 들어야지.
해서 인면조는 단군을 향해 날았다.
거대한 날개를 이용해 쏜살같이 날았다.
"여전히 그 모자를 쓰고 있구나."
"네. 이제 한몸 같이 편안합니다."
대화는 늘 그러하듯 일상적인 문답으로 시작되었다.
허나 인면조는 알고 있었다.
단군의 성품은 그러하되, 결코 이유 없이 부르는 일이 없다는 걸.
너무 바쁜 나머지 본성을 억누르고 살아가는 위대한 존재, 그것이 단군이었다.
"내 너를 부른 것은 다른 뜻이 있어서가 아니라...."
과연 단군은 심각한 얼굴로 말을 이어나갔다.
손가락을 쓰러진 산신령을 가리키면서였다.
이제 보니 죽은 건 아니었다.
정신을 잃었나 했더니 그것도 아니었다.
"혼령이...?"
신수인 인면조는 그의 몸 안에 응당 있어야 할 무엇이 없음을 알아보았다.
단군은 그런 인면조의 날갯죽지를 두드렸다.
"그래. 그는 지금 낯선 땅에 있단다."
"그렇군요. 근데 저는...?"
"네가 가서 도와주거라."
"네? 낯선 땅이.... 어디 입니까?"
육신을 두고 다닐 땅이라면 이승은 아닐진데, 설마 저승을 말하는건가.
염라....
그는 제아무리 인면조라 해도 껄끄러웠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이를 이승의 존재가 편히 대할 수 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 아니겠나.
"네가 염려하는 그곳은 아니니라."
"아, 네. 그럼...."
"옳지. 방금 들었느냐?"
"어, 네. 이거.... 이거 삼족오...."
"그래."
인면조는 삼족오가 단군의 명을 듣는 이라는 걸 어렵지 않게 떠올렸다.
"애초에 계획을 했군요?"
그래서 하늘을 열고 그랬나?
대체 어딜 보내려고?
억울함과 분통함에 단군을 보고 있으려니 어느새 소리가 인면조를 덮어 버렸다.
그렇게 어디론가 혼백이 휩쓸려 가는 와중에도 단군의 목소리만큼은 똑똑히 들렸다.
"너는 더이상 네가 네가 아닌 세상으로 가게 될 것이다. 잘 적응하고, 하루 빨리 산신령을 찾아 돕거라. 그는 선한 이이니, 혹여라도 상처 받을 까 염려 되노라."
나는.
나는 염려가 안됩니까?
새라서?
인면조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플랫폼에 떨어졌다.
그리고 그 순간 내가 내가 아니게 된다는 말이 무슨 말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내.... 내 모자 어디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