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RITYCOMMON
KOREAN C.V.김용준
STORY한산이가 & 이종범
삼족오우주의 공명을 알리는 신령한 새.태양에 산다고 알려진 다리 셋 달린 새로서 삼족오의 울음소리는 다음 스트로크가 임박했음을 의미한다. 스트로크를 발생시킨 위대한 존재의 전령이 아닐까. 기이한 소리가 하늘에 울려 퍼졌다. 동시에 세상에서 가장 드높이 나는 새, 태양 근처를 노니는 새가 관찰되었다. "큰일이구만...." "곧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걸세." 시커먼 새. 보는 것만으로도 불길한 생각이 덜컥 들게 하는 새의 이름은 삼족오라 했다. "하필.... 삼족오가...." "퇴각해야 하는거 아닌가?" 벌판을 호령하던 오랑캐들은 전에 없이 심각한 얼굴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들에게 저 새는 재앙 그 자체였으니. -두두두두 그래도 시간이 있을 거라 생각했다. 회의 정도는 할 시간이 있을거라 생각했다. 아니, 빼앗은 것을 좀 더 누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고, 고구려군이다!" "도, 도망쳐!" 오산이었다. -두두두두 철기병. 일명 개마무사라 불리는 존재가 전장에 출몰했다. 가슴에 다리가 셋 달린 시커먼 새의 징표를 달고. "으, 으아아악!" "도, 도망쳐!" 벌판을 호령하던. 원래 주인인 양민을 학살하던 오랑캐들이 벌레처럼 죽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냥 개마무사도 무섭지만 삼족오를 새긴 이들은 적들에게 그저 재해였다. 인력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재해. "모두 나를 따르라!" 그 중에서도 제일 앞선 이는 특별했다. 왕이 아닌 대왕이라 불릴 지경이었다. 광개토. 그의 명에 수많은 삼족오가 전장을 내달렸다. 한반도를, 중원을. 그 소문은 바다 건너 왜에도 닿았다. "삼족오를 봤네." "무슨 일이라도 벌어지겠군...." 해가 갈수록 광개토 대왕과 개마무사는 잊혀져 갔으되, 그들의 상징이었던 삼족오는 전설로 남아 입에서 입으로 이어졌다. "홍수가 났다더구만...." "결국, 그리 되었나." 정작 삼족오는 그의 악명이 그리 마음에 들진 않았다. 입을 삐죽이고 있으려니, 붉은 옷에 검정 관모 그리고 안경을 쓴 사내가 하하 웃었다. 그리곤 삼족오의 부리 위를 긁어 주었다. "네가 억울하겠구나. 허나 이해하거라. 무릇 사람들의 기억이란 그리 완전한 것이 못 되는 법이니." "끼이, 끼이이." "그렇다고 울진 말고. 그랬다가 또 밑에서 사단이 날 수도 있단다." 단군. 그는 이제 삼족오가 아니라 하늘 아래 세상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바로 천지가 보이진 않았다. 단군이 위치한 하늘이란 천외천, 즉 하늘 위의 하늘을 뜻해서 그랬다. 이곳까지 올라오는 것이 허락되는 존재란 그리 많지 않았다. "미안한 일인데...." 올라온다고 해도, 다시 내려가는 것이 또 녹록치 않은 일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두 개의 세상을 오가는 일이 어디 쉽겠나. "너가 또 한번 내려갔다 와야 겠구나." 그런 일을 단군은 눈 하나 꿈쩍하지 않고 삼족오에게 부탁했다. "끼!" 삼족오는 투정을 부려 보았다. 오가는데 드는 시간도 시간이지만, 힘들기도 더럽게 힘들어서 그랬다. 게다가 시선도 그리 곱지가 못했다. 죽도록 고생했더니 욕만 먹고 있지 않나. "어차피 가지 않아도 욕은 먹지 않느냐." 그런 삼족오의 생각은 그대로 단군에게 읽혔다. 전지전능에 가까운 존재라 가능한 일이라기 보다는 그냥 전후관계를 아는 사람이면 누구라도 아는 일이었다. "저거 보거라." 단군은 태양을 가리켰다. 여기서 보면 태양도 그냥 계란 만한 크기로 보이는데, 그 계란에 검정 무늬가 날뛰고 있었다. "저거 보면 사람들이 또 뭐라하겠니." "끼!" 억울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이젠 태양에 생기는 흑점도 삼족오의 소행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망원경인지 나발인지도 만들어 쓰면서 아직도 저런 누명을 씌우다니. 하여간 흑점이 있으면 지구에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건 기정 사실이었고, 그걸 또 삼족오 탓을 하는 이들이 나올 것 또한 기정사실이었다. 해서 뾰로통한 얼굴을 하고 있으려니 단군이 또 웃었다. "걱정말거라. 이번 일은 진짜 좋은 일이니. 대신 좀 바쁠 텐데...." "끼?" 좋은 일? 단군은 장난기 있는 사람이로되, 거짓을 논하는 이는 아니지 않나. 적어도 나쁜 일을 좋은 일이라 속일 사람은 아니었다. 삼족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는 동안 단군은 저멀리, 적어도 삼족오의 시선은 닿지 못하는 곳을 돌아보았다. "거대한 일이다. 시기가 적절한 지는 모르겠으나.... 그렇다고 넘길 일도 아니지." 얼굴엔 난감하다는 빛이 번지고 있었다. 삼족오로서는 드물게 보는 일이었다. 그가 단군을 섬겨 온 세월을 생각하면 보통 일이 아니라 할 수 있었다. 5천년. 5천년간 단군이 당황했던 경우는, 삼족오가 단군 말고 다른 인간 광개토 대왕에게 반해 그와 함께 달렸던 때를 제외하면 단 한번도 없었으니. "너는 내 전령이 되어, 스트로크를 알리게 될 것이다. 중요한 일이고 쉬운 일은 아닐 터. 내 너를 도우마." "끼이...?" 삼족오는 돌연 날개에 힘이 넘쳐 오르는 것을 느꼈다. 이만하면 세상과 세상을 수십번 오가도 부족함이 없을 듯 했다. 그렇다는 건.... "끼!" 단군 성격상 괜한 짓을 벌일 리가 없었다. 하여 부리로 쪼아보니 단군은 그저 웃었다. 그리곤 아래 놓인 이를 가리켰다. 그제야 삼족오는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세상은 하나이되 하나가 아니었다. 신수인 삼족오의 눈에는 보였다. '연결'이 벌어지고 있음을. "그럼, 가서 울거라. 내 네 머릿속에 친히 누구를 찾아가야 할 지 알려줄 터이니." 이렇게 되면 아무리 내키지 않는 일이라 해도 어쩔 수 없는 법이었다. 삼족오는 더욱 거대해진 날개를 활짝 펴고, 하늘 아래 세상으로 향했다. 머릿속에는 단군이 일러준 이들의 얼굴이 맴돌았다. 누구에게 먼저가야 할까. 그건 또 말해주질 않았다. "끼이이이이!" 세간에 불길한 징조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